여기서 말하는 ‘일본체험파’란 일본 유학생이란 명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유학생이란 관용적인 명칭 대신에 ‘일본체험파’란 다소 생소한 명칭을 쓰는 것은 반드시 학생 신분이 아니더라도 일본 문물을 체험한 이들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인물들 중 선구에 해당하는 인물들로는 유길준·정병하 등을 들어 볼 수 있다. 이 두 인물들 중 유길준은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경험했다. 그와는 달리 정병하는 일본의 교육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수학한 경우가 아니라 1882년경 짧은 기간에 걸쳐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문물을 체험한 경우이다.400)유영익,≪갑오경장연구≫(일조각, 1990), 187쪽.
이 유형에 속하는 이들은 당대의 문체로 국한문체를 선택했다. 1880년대에 일본을 체험한 유길준·정병하가 각각≪서유견문≫·≪농정촬요≫같은 저술을 국한문체로 남겼다든가 1900년대에 일본을 체험한 최남선·이광수 등이 그들의 저술들 중 많은 양을 국한문체로 남겼다는 사실이 그 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유형에 속하는 이들의 숫자는 많은 편이다. 따라서 그 많은 이들이 시대의 과제에 대처하였던 모습을 일괄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말할 것도 없이 예외적인 모습을 보여 준 이들의 숫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예외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에 속하는 이들이 당대의 과제에 대처하였던 모습을 하나의 경향으로 말한다면 반제의식에는 비교적 철저하지 못하였던 반면, 반중세의식에는 그들 나름으로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이들은 새로운 문학 장르들을 수입, 창안하여 정착시키는 데 가장 생산적이었다. 개화기의 소설로서 신소설을 발전시킨 이들은 이 유형에 속하는 이들이었으며 뒤에 근대소설을 발전시킨 이들도 이 유형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또한 개화기 시가로서 이른바 7·5조의 창가와 신체시를 발전시킨 이들도 이 유형에 속하는 인물들이었으며 뒤에 근대시로서의 자유시를 실험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이들도 이 유형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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