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1. 근대 문학의 발전
  • 2) 개화기의 시가 장르
  • (1) 애국·독립가

(1) 애국·독립가

 개화기 시가의 유형들 중 애국·독립가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이었다. 이 유형의 작품들은 애국·독립·개화의 의지를 고취하기 위하여 제작된 단형의 국문 시가로서 창가라고도 불린다. 창가란 흔히 가창이 필수적인 시가처럼 이해되는 경향이 있으나, 모든 애국·독립가가 반드시 가창되었던 것은 아니다. 단형 국문 시가로서 애국·독립가의 형태적 연원은 다양하다. 어떤 작품은 가사를 단형화했으며, 어떤 작품은 민요의 형태를 빌렸고, 또 어떤 작품은 기독교 찬송가를 비롯한 서양 악곡에 얹어 부르도록 만들어졌다.402)조동일,≪한국문학통사(4)≫(지식산업사, 1986), 253쪽.

 애국·독립가 유형의 작품들 중 가장 일찍 발표된 작품은 ‘셔울 슌청골 최돈셩의 글’이라고 밝혀져 있는,≪독립신문≫제3호(1896. 4. 11)에 실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2음보를 한 행으로 하여 2행씩 짝을 맞춘 귀글체 방식으로 모두 24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 몇 행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대죠션국 건양원년   텬디간에 사되야

쥬독닙 깃버셰   진츙보국 뎨일이니

 

임군 츙셩고   인민들을 랑고

졍부를 보호셰   나라긔를 놉히달셰

 위에 인용한 ‘애국가’의 ‘대죠션국 건양원년/쥬독닙 깃버셰’라는 대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애국·독립가의 다수 작품들은 현실에 대한 밝은 전망이라는 공통된 현실인식을 보여 주었다.≪독립신문≫에 실린 28편의 애국·독립가 작품들 중 낙관적인 현실인식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작품은 ‘인쳔 졔물포 뎐경’이 지은 ‘국가’이다.

봉츅세 봉츅세   즐겁도다 즐겁도다

아국태평 봉축세   독립쥬 즐겁도다

 

퓌여라 퓌여라   향기롭다 향기롭다

우리명산 퓌여라   우리국가 향기롭다

 이 작품에서는 ‘즐겁도다 즐겁도다/독립쥬 즐겁도다’와 같이 ‘독립쥬’에 대한 慶賀의 느낌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츅세 봉츅세/아국태평 봉츅세’와 같이 국가의 태평을 송축하고 기대하는 느낌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렇게 낙관적인 현실인식을 노래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마도 갑오경장(1894) 이후에 진행된 “청국에 의부(依附)하려는 정신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確建한다”고 誓告한 洪範 14조의 정신과 ‘建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게 된 역사적 사실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범 14조의 서고와 조선국 최초의 연호 사용은 명목만으로는 독립, 자주의 움직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홍범 14조의 서고와 연호 사용 직후이면서 이 작품이 발표되기 직전인 1895년 10월에 왕비인 민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한 을미사변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말미암아 1896년 2월에는 국왕인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 俄館播遷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 시기가 명목만의 자주 독립에 안주할 시기가 아니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 시기의 실상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독립신문≫에 실린 애국·독립가의 다수 작가들이 낙관적인 현실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점은 두 가지 사실에 말미암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수 애국·독립가 작가들의 현실 파악 능력이 미숙하였으리라는 점과 그 작품들을 실어 주었던≪독립신문≫의 현실 파악 능력 또한 넓고 깊지 못했다는 점403)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기폭제가 되어 봉기한 의별들에 대한 관점 같은 것이 이 신문의 주체성이 든든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이 그것들이다.

 ≪독립신문≫이외의 개화기의 신문, 잡지들을 통하여서도 애국·독립가 작품들은 다수 발표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 편수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의 시가들은 작품의 현실인식과 형태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을 마련하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직설적으로 교술을 행하였던 이 시가 유형의 한계를 극복하는 작업은 힘겨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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