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2. 근대 예술의 발전
  • 1)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구성

(1) 한국음악사회 구성

 역사적으로 한국음악사회는 기층민중들의 음악사회를 구성하는 세 축, 곧 농민, 떠돌이와 붙박이 예인집단, 그리고 천민출신으로 조직된 神廳(才人廳) 등이 형성되어 있었다. 또, 성리학적 예악관에 바탕을 둔 樂壇은 중인출신들의 詩會, 선비들 중심의 시회와 樂會, 사대부 출신들의 악회와 耆會, 그리고 궁정과 병영은 물론 지방 관아에서 이루어진 음악계 등이 있었다. 이 밖에 기층민중 중심의 신앙과 불교와 관련한 음악사회 등이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음악사회는 중층적 구조이었다.

 기층민중들의 음악이 민족음악의 토대가 될 수 있었던 점은 이들의 ‘생활의 음악화와 음악의 생활화’한 역사가 공고한 데서 비롯하였다. 기층민중들은 생산성 증대와 관련한 문화, 자연과 우주현상에 대한 신앙적 문화, 그리고 생산의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놀이문화를 복합문화로 발달시켰다. 특히, 17∼18세기에 이앙법의 발달로 두레가 부각되자 풍물의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일·믿음·놀이 노래를 더욱 풍요롭게 발달시킨다.

 예인집단은 주로 기층민중 출신의 예인들로서 종합예술집단을 말한다. 이들이 노래·악기·춤·인형극·재주(줄타기·땅재주·접시돌리기·솟대타기 등)·재담 등 전 장르를 종합한 전문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떠돌이 예인집단들인 사당패·초라니패·솟대쟁이패·걸립패·굿중패 등은 떠돌면서 연행을 하였지만,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浮沈을 거듭하였다. 붙박이 예인집단은 특정 지역에 붙박여 살면서 활동하는 예인집단으로 선소리패나 탈패, 또 광대패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신청(재인청)은 당골 출신의 예인들의 조직체나 청사를 말한다. 이들은 북극성(辰)을 축으로 동·서·남·북의 (북두)칠성과 해(日, 日光帝釋)와 달(月, 月光帝釋)을 공간성(宇)으로 삼고, 현재의 연원성을 시간성(宙)으로 삼은, 곧 宇宙의 日月星辰으로 聖顯化하고, 음악·춤으로 민중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생활하였다. 이들은 氣훈련, 구음장단, 가야금부터 춤에 이르는 一家교육, 살판과 죽을판의 줄타기와 땅재주 교육, 그리고 굿 현장에서 살아 갔다.424)신청출신들은 巫籍에 올라 巫稅를 냈으며, 巫夫들은 중앙과 지방의 장악원에 악공으로 차출되거나 軍營의 巫兵으로 차출된 빈민층이다. 노동은,≪한국근대음악사Ⅰ≫(한길사, 1995), 172∼173쪽. 한편, 官奴의 대부분이 신청출신들이었음은 노동은,<한국음악가론>Ⅰ(≪음·악·학≫Ⅳ, 음악학연구회, 1997), 127∼180쪽 중 137쪽 이후를 참고.

 樂壇은 유학의 예악관에 바탕을 두고 왕권을 수행하는 궁정음악, 선비나 사대부출신들의 악회나 기회, 중인출신들의 시회, 그리고 궁정과 지방의 관아와 병영의 음악을 모두 망라한다. 정치와 예를 완성하려고 최고의 덕목을 樂에 둔 조선은 장악원을 두어 왕권을 따르는 조직체로서 악의 실제적 제도화를 이루고, 모든 양반관헌 출신들에게 그 수양악기로서 거문고(琴)와 비파(瑟)를 권장하고 있었다. 조선은 모든 윤리와 정치의 이념이자 인격의 완성을 악의 실현에 두고 있었다. 국가의 악단 역시 그 세계관인 일월성신을 음악으로 제도화시켰다.425)중앙의 장악원은 예조산하로, 지방의 장악원은 군영 산하로 두고, 1894년 그 직제를 폐지시킬 때까지 五禮에 따른 각종 제례·군례·연례 등의 의례를 치렀으며, 그 담당을 樂生과 樂工들이 하였다. 관노와 관비출신의 노비들도 동원되었다. 각 군영은 吹手·吹鼓手·細樂手 등을 조직하여 신호체제와 행진은 물론 국왕과 당상관들의 의례와 행차, 그리고 온갖 행사에 공·사적으로 동원되었다. 특히 각 군영의 세악수들은 전국 신청 조직체인 五都家체제로 관장하였다.

 기회는 관료출신이나 예순 살 이상의 노인들인 耆老들이 갖는 연회 모임이다. 효행을 장려하여 유교의 통치이념을 구현하려는 정책에서 비롯된다. 일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양로연과 양반관료출신들의 기로회나 耆英會를 통하여 樂과 축시 그리고 투호놀이가 성행하였다. 악회는 다양한 계층들이 벌인 종합적 판 모임으로 선비들이 거문고 등을 일반화시킨 것이 바탕이 되어 전개되었다. 시회는 중인출신들이 중심이 된 시 동인 모임체(詩社)로서 歌壇을 만들어 漢詩·시조·가곡류를 창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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