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Ⅰ. 근대 언론활동
  • 1. 근대 신문의 효시
  • 4) 박문국의 운영
  • (1) 발행부수

(1) 발행부수

순보와 주보의 내용 및 이를 제작한 사람들은 누구였느냐 하는 문제 못지 않게 궁금한 일은 도대체 이 신문이 몇 부나 발행되어 어떤 사람들이 읽었느냐 하는 점이다. 박문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나라에서 특별한 종류의 세금을 징수하여 충당하는 방법과, 신문 대금을 받아들이는 두 가지 수입원이 있었다. 순보와 주보의 발행부수에 따른 구독료는 신문의 경영면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발행부수는 이 신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을까를 살펴보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인쇄사정, 당시의 행정제도와 경제적인 여건, 종이의 소비량, 우편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신문의 배포와 보급방법은 京主人(또는 京邸吏)과 營主人(또는 營邸吏)을 통해서 전국의 지방행정 단위로 신문을 보내고 구독료도 그들을 통해서 징수하였다.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신문 보급은 행정조직을 통하고 그 구독대상도 일차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순보의 전체적인 발행부수를 정확히 밝힌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통리아문의 일지인≪統署日記≫에는 순보와 주보의 보급방법 및 그 발행부수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들이 간헐적으로 눈에 뜨인다. 지방관청에서 구독료를 올려 보낸 금액이 있는데 이를 역산하여 발행부수를 알아내는 방법으로 단편적으로 나타난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매호 3,000부 정도가 발행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018)발행부수를 밝힌 근거와 계산방법에 관해서는 정진석, 앞의 책, 90∼97쪽 참조.

구독자 가운데는 일인들도 있었다. 일인들은 한국의 정세를 알기 위해서도 신문을 보았겠지만, 상인들의 경우에는 특히 물가시세를 적은<시치탐보>를 영업상 참고로 하였을 것이다.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 외국의 문물을 소개하고 정부의 시정방침과 각 지방의 장계, 관리들의 임면, 물가동향 등을 폭넓게 알리려 했던 근대 신문인 순보와 주보의 발행부수 3천여 부는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독자대상은 주로 관리들이었지만 전국 각지에 고루 보냈으며 일반인과 외국인들까지 읽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신문이 우리 나라의 개화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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