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Ⅰ. 근대 언론활동
  • 1. 근대 신문의 효시
  • 4) 박문국의 운영
  • (2) 주보의 폐간

(2) 주보의 폐간

신문을 발간하고 박문국을 운영하는 경비는 구독료 외에 특별세를 거두어 충당하였다. 그러나 박문국의 경영상태는 원활하지 못하였다. 구독료의 미수, 세금의 체납 등으로 경비가 충분하지 못한 데다가 지방에서 구독료를 징수하는 경주인들의 폐단도 있었다. 순보를 창간하기 전부터 경주인들이 박문국 경비 세금을 걷는 일로 말썽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지만,019)≪統署日記≫, 고종 20년 9월 10일·10월 9일. 그 후로도 신문 구독료 걷는 것을 핑계로 경주인들의 행패가 적지 않았다.

당시는 박문국만이 아니라 통리아문의 또 다른 기구인 育英公院 등의 경비도 거둬들여야 했으므로 지방관서에서도 몹시 번거로웠을 것이고, 민간의 폐해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폐단과 경영난은 박문국의 존폐문제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지경을 초래하고 말았다. 1888년 7월 14일 내부는 박문국을 철폐하여 통리아문에 통합시키기로 하고 왕의 허락을 얻었다.

박문국은 1883년 8월 17일에 창설되어 5년 동안 신문을 발간하고 개화사상의 전파와 외국의 문물 및 학문 소개에 큰 공적을 남겼으나 이를 통리아문에 통합시키도록 된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주보의 마지막 호수는 1888년 3월 12일자로 발행된 제106호이다. 이 때부터 매주 한 호씩 발행되었다면 박문국이 폐지된 7월 14일 무렵까지는 제123호가 나왔을 것이다. 주보의 발행일자는 매주 월요일이었는데 7월 9일이 월요일이었다.

박문국에서는 단행본도 출판하였다. 박문국에서 발간하여 현재 남아 있는 단행본으로는≪萬國政表≫가 있다. 1887년 1월경에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4책 343쪽에 51개 나라의 정치·종교·토지·인구·재정·병제·통상 및 공업 등의 정세를 소개하였다. 조선과 중국에 관한 내용은 두 나라의 典獻에 의하고, 일본과 각국에 관한 것은 1886년도의≪영국정치연감≫을 번역 편찬하였다고<범례>에서 밝히고 있다. 박문국에서는 다른 간행물도 더러 인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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