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Ⅰ. 근대 언론활동
  • 2. 근대 언론의 발달
  • 3) 외국인의 신문 발행과 잡지
  • (3) 잡지의 시초

(3) 잡지의 시초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서 주장이 다르다. 1892년 1월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올링거(F. Ohlinger)부처가 창간한≪코리안 리포지토리≫를 최초의 잡지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896년 2월에 동경에서 유학생들이 발행한≪친목회회보≫가 잡지의 효시라는 견해도 있고, 1896년 11월의≪대죠션독립협회회보≫가 최초라는 사람도 있다.

한말에 발행된 잡지는 ① 교회계열에서 발간한 것, ② 유학생들이 발행한 것, ③ 단체 또는 학회를 중심으로 발행된 것, ④ 개화계몽을 위주로 한 잡지류의 4종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당시에 잡지를 발행한 사람들은 직업적인 잡지인이 아니라 교회계통이나 유학생회, 또는 여러 애국계몽단체의 책임자나 잡지 발행담당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계몽운동에 뜻을 둔 소수의 잡지발행인들도 있었다.

≪코리안 리포지토리≫는 서양선교사들이 영어로 발행하였지만 우리 나라 언론발달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잡지였다. 이 잡지는 올링거부처가 1892년에 창간하여 1년 동안 발행하다가 중단했는데 2년 후인 1895년 1월에는 아펜젤러와 존스(George Herber Jones)가 발행인이 되어 속간하면서 헐버트가 부편집인으로 실무를 맡았다. 이 잡지는 선교사들에게 한국의 사정을 알리자는 데 목적이 있었으므로 한국의 역사·문화, 당시의 정세 등에 관한 내용을 취급하였다. 1898년 12월까지는 월간이었으나 1899년부터는 4면 또는 8면의 조그만 주간 뉴스 블레틴 형태로 6월까지 발행되었다.≪코리안 리포지토리≫는 영어로 발행된 잡지였지만 당시 우리 나라의 사정을 연구하는 데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친목회회보≫는 일본유학생들이 동경에서 발행한 잡지였다. 1895년 2월에 창간되어 1898년 4월까지 6호를 발행하였는데 편집 겸 발행인은 崔相敦이었다. 최상돈은 우리 나라에서 잡지편집 겸 발행인으로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대죠션독립협회회보≫는 독립협회의 기관지였다.

민간출판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출판사업을 벌인 사람은 崔南善과 그의 형인 崔昌善이었다. 이들 형제는 1908년에 新文館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1920년대까지 활발한 출판사업을 벌여 대표적인 잡지인이자 출판인이 되었다. 최남선은 우리 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종합잡지로 치는≪소년≫(1908년 11월)에서≪붉은져고리≫(1913년:월 2회간 신문)·≪새별≫(1913년 4월)·≪아이들보이≫(1913년 9월)·≪청춘≫(1914년 10월) 등의 잡지를 발행했고 3·1운동 후인 1922년 9월부터는 시사주간지≪東明≫을 발행하다가 1924년 3월에는 일간지≪시대일보≫를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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