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Ⅰ. 근대 언론활동
  • 3. 언론의 구국투쟁
  • 1) 한말 언론과 계몽운동
  • (1) 국내신문

(1) 국내신문

일제의 국권침탈이 본격화되던 1900년대 중반에 한국인이 발행한 신문은 10종 안팎이었다. 그 가운데 1909년 10월에 晋州에서 창간된≪慶南日報≫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에서 발간된 중앙지였다. 그리고 몇몇 신문은 발간기간이 겨우 1년 정도에 불과하였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일본인이나 구미인이 발행인이 되어 낸 신문도 적지 않았지만, 일본인 발행신문은 일제의 식민지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고, 구미인이 발행한 신문도≪大韓每日申報≫나≪京鄕新聞≫을 제외하면 종교적인 목적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간행되고 있던 신문을 정리하면<표 1>과 같다. 이 표에는 일본인 발행신문과, 개신교에서 발간한 순수한 종교신문, 예컨대≪그리스도신문≫이나≪예수회회보≫는 제외되었다.

순서 제 호 창 간
연 월 일
종 간
연 월 일
지령
(발행기간)
창 간
대 표
문 자 비 고
1 帝國新聞 1898. 8.10 1910. 3.31 3,240호 李鍾一 국 문 崔岡·鄭雲復사장
2 皇城新聞 1898. 9. 5 1910. 9.14 3,456호 南宮檍 국한문 張志淵·柳瑾사장
3 大韓每日
申報
1904. 7.18 1910. 8.28 1,461호 베 델 국한문/국문 영문판 별도
梁起鐸·申采浩관여
4 國民新報 1906. 1. 6 1910. 8. 4년 7월 李容九 국한문 一進會 기관지
5 萬 歲 報 1906. 6.17 1907. 6.30 293호 吳世昌 국한문 루비활자
천도교 기관지
6 京鄕新聞 1906.10.19 1910.12.30 220호 드망즈 국 문 주간/천주교 기관지
7 大韓新聞 1907. 7.18 1910. 8.31 3년 1월 李人稙 국한문/국문 萬歲報 인수
李完用내각 기관지
8 大韓民報 1909. 6. 2 1910. 8.31 357호 吳世昌 국한문 대한협회 기관지
9 慶南日報 1909.10.15 1915. 1 887호 金弘祚 국한문 격일간/晉州 발행
張志淵주필
10 大同日報 1909.10.19 ? ? 張基世   주간에서 일간
친일지
11 時事新聞 1910. 1. 1 1910. 5. 8 ? 閔元植 국한문 친일지
12 大韓日日
新聞
1910. 6. 4 ? ? 金東集 국한문 大同日報 후신

<표 1>한말 국내신문 발행현황(1904∼1910)

<표 1>을 살펴보면, 1904년 7월≪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기까지≪帝國新聞≫과≪皇城新聞≫만이 발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1895년 일본인들이 창간한 한국어신문으로≪漢城新報≫가 존재하였으나, 그것은 일제의 한국침략을 위한 여론형성을 목적으로 하고 일본공사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또≪대한매일신보≫도 실제 신문제작은 한국인들이 하였지만, 그 발행인이 영국인 베델(裵說, E. T. Bethell)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1898년에 최초의 일간신문인≪일신문≫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민간신문들이 간행되었지만, 1900년 이래≪제국신문≫과≪황성신문≫만이 각기 국문과 국한문으로 발행되었던 것이다. 1906년에 이르러 一進會의 기관지로≪國民新報≫가 발행되었고, 이어 天道敎에서≪萬歲報≫를, 天主敎에서는 주간으로≪京鄕新聞≫을 창간하였다. 1907년 이후 발행된 신문은≪大韓民報≫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친일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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