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Ⅱ. 근대 종교운동
  • 1. 유교
  • 2) 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유교개혁사상
  • (1) 도학파의 유교개혁사상

가. 도학파의 종교관

먼저 도학자들이 제기하였던 종교관의 양상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신념에 따라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한말 도학의 대표적 주제는 위정척사론으로 인식된다. 여기서 척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邪敎이다.101)‘邪敎’는 邪道로 일컬어지며, 특히 더욱 엄격한 배척의 입장에서는 ‘邪術’로 일컫기도 한다. 사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하는 서양종교로서 기독교와 서양의 문물제도까지 포함하여 가리킨 것이다. 이 시기에 척사론의 입장에서는 겉으로 서구세력과 일본의 침략성을 비판하였지만 그 속으로 그들 문명의 근원에는 정신적 요소로서 기독교가 있음을 주목하였다. 따라서 서민대중 속에로 뻗어 가는 기독교의 강한 침투력과 확산력을 의식하면서 유교에 대한 자기각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한말의 도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도학적 신념의 각성운동으로서 문헌편찬 활동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곧 유교교육의 강화와 척사론적 신념을 재확인시키려는 의도에서 편찬된 두 편의 문헌을 들어보면, 하나는 기호지방에서 宋秉稷이 편찬하고, 48명이 참여하여 1900년에 간행한≪尊華錄≫(6권 3책)이요, 다른 하나의 문헌은 영남지방에서 許拭과 郭漢一 등이 편찬하고, 52명이 참여하여 1903년 간행한≪大東正路≫(6권 3책)이다.102)琴章泰,≪동서교섭과 근대한국사상≫(성균관대 출판부, 1984), 268∼285쪽. 이 두 문헌은 편찬의도나 체제가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1899년 고종이 내린<尊聖綸音>을 공통으로 싣고 있다는 점에서도 상호 유사성을 보여준다. 당시 대한제국의 정부가 공자와 선현을 모신 사당인 文廟의 제사와 유교교육을 소홀히 한다는 유림들의 항의가 강하게 일어나자, 이에 상응하는 정부의 유교에 대한 태도를 밝힌 것이 바로<존성윤음>이다.

이 윤음에서 고종은 “세계의 모든 나라가 종교를 극진히 존숭하는 것은 종교가 人心을 맑게 하고 정치의 도리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라” 하여,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함과 더불어 종교의 기능을 중요시하는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이 시기에 우리 사회의 종교관을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동시에 고종은 스스로 “우리 나라에서의 종교는 범상하게 존중되기 때문에 그 실지가 없다”라고 지적하여, 국가적으로 종교정책이 결핍되었음을 반성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우리 나라의 종교는 공자의 도가 아니겠는가(我國之宗敎其非吾孔夫子道乎)”라고 단언하고 있다. 고종은 이 윤음을 통해 우리 나라의 종교 곧 국교를 유교라고 확인하였던 것이다. 또한 고종은 국가가 처하고 있는 위기도 종교가 밝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라 지적하고, 온 마음을 종교의 유지에 둘 것을 약속하면서, “앞으로는 朕과 태자가 한 나라 유교의 宗主로서, 箕子와 孔子의 도를 밝히며, 선조의 뜻을 잇고,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서 진심으로 공자를 받들어 올리고 도를 따르겠다”103)≪尊華錄≫ 권 6, 綸音.
≪大東正路≫ 권 5, 尊聖綸音.
고 선언한다. 이 시기에 고종임금에 의해 유교에 대한 아무런 변혁의지도 없이 유교를 국교로 선언하고 있는 사실은, 당시 중국의 무술변법시기에서 康有爲가 孔敎의 변혁과 국교화를 요구하는 것과 비교할 때 우리 사회의 보수적 여건이 잘 드러난다.

위정척사론의 가장 강경한 입장을 지켰던 도학자로서 堤川의병을 비롯한 의병운동을 주도했던 柳麟錫(毅庵, 1842∼1915)은 1913년에 지은≪宇宙問答≫에서 중국문화를 구성하는 네 가지 조건 곧 제왕의 道統, 성현의 종교, 倫常의 正道, 衣髮의 重制를 제시하면서, 그 하나로 ‘성현의 종교’를 들고 있다. 그는 성현의 종교로서 중국의 ‘교’는 공자를 ‘宗’으로 삼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인류로서 공자의 교를 ‘종’으로 삼지 않으면 인류가 아니다”라고 강조하여, 공자의 교를 모든 인류의 보편적 진리로 확신하는 자신의 신념을 보여준다. 그는 이 성현의 종교에서 최고의 도리 곧 上達道理가 나오는 것이라 하여 종교가 모든 도리의 근원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104)柳麟錫,≪毅菴集≫ 권 51, 宇宙問答. 이러한 정통도학자들에 의해서도 유교가 종교로서 자기확인 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유교를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우월한 종교라는 독단적 신념이지만, 이를 통하여 유인석은 ‘종교’라는 서구문화의 개념틀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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