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Ⅱ. 근대 종교운동
  • 1. 유교
  • 2) 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유교개혁사상
  • (2) 애국계몽사상가의 유교개혁사상

가. 장지연의 유교개혁사상과 대동교

張志淵(韋菴, 1864∼1920)은 영남도학의 학풍 속에서 성장하여, 먼저 李瀷과 丁若鏞의 실학사상에 접하면서, 이를 계기로 자강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마침내 애국계몽사상가로 활동했다. 1899년≪時事叢報≫와≪皇城新聞≫의 주필이 되어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의 최선봉에 나섰다. 또한 1900년 廣文社의 출판위원으로서≪朝鮮儒敎淵源≫을 저술한 것도 유교를 통한 민족문화의 전통을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유교연원≫은 한국유교사에 관한 최초의 통사적 서술이다. 그는 이 저술에서 도학과 실학의 양면을 모두 긍정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아무의 관심도 끌지 못했던 관서와 관북지방의 유학자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민족통합 의식을 투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조선유교연원≫의 부록에서 그는 유교의 기본성격을 재확인하고 역사를 통해 사회적 효용성을 성찰한다. 그는 유교전통의 가치를 중요시하면서도 당파적이고 허세와 위선에 빠진 도학자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식을 통하여 유교개혁론의 근거를 확인한다.

장지연은 유교에 대한 역사적 비판론을 검토함으로서 당시의 국가멸망에 대한 유교의 책임을 묻는 비판을 넘어서 정당한 평가의 기준을 정립하고자 시도한다. 조선사회에서 사회의 참혹함과 붕당의 해독이 일어난 것은 유교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순치시킨 것이며, 유교의 이름을 빌어 임금을 속인 자들의 죄요 유교의 죄가 아님을 강조한다.111)張志淵,≪朝鮮儒敎淵源≫권 3, 儒敎者辨(129∼130쪽).

또한 그는 공자를 유교의 宗祖라 함으로써, 유교를 종교로 이해하고 공자를 종교의 교주로 본다. 그는 유교의 종교적 각성을 통하여 민족정신의 강화를 추구하였다. 그는 우리 민족의 종교적 시조를 단군의 神敎라 보고, 箕子를 한국유교의 종조라 한다. 우리의 종교사를 불교 우세시대와 유교·불교의 병행시대, 유교의 우세시대로 변천되어 왔음을 제시하며, 당시를 신앙의 자유와 종파적 다원화의 시대로서 민족통일의 관념이 결핍되는 것으로 지적하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유교개혁론은 민족운동이 기본이며 유교개혁사상이 민족의식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112)張志淵,≪朝鮮儒敎淵源≫권 1, 儒敎者辨(1쪽).

그는 박은식 등과 1909년(융희 3) 9월 大同敎를 창건함으로써 당시 친일유교단체인 大同學會에 저항하여 민족정신을 기초로 유교를 조직화하는 민족적 종교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는 종교의 국가적·민족적 역할을 주목하여, “종교란 국민의 腦質을 鑄造하는 원료요, 한 나라의 강약과 흥망이 종교에 걸려 있다”라고 종교의 특성을 정의함으로써, 종교의 사회적 요청을 강조한다. 그의 유교개혁사상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민족적인 의식을 지닌 혁신적인 것으로서, 애국계몽사상의 이론과 더불어 강유위와 초기 양계초의 영향에 깊이 젖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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