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Ⅱ. 근대 종교운동
  • 3. 천주교
  • 6) 근대 천주교회의 사회적 기여
  • (2) 근대적 출판·언론 문화활동

(2) 근대적 출판·언론 문화활동

신앙전도활동은 말씀과 글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信敎者의 전교활동 없이 조선 후기사회 전통지식인들의 서학활동을 통해,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생적 교회창설로 시작된 한국천주교회는 한문으로 된 글(한역교리서)를 통해 천주신앙을 깨우친 교회였다. 초기 한국천주교인들은 그런 漢文敎理書를 붓으로 필사하여 교리를 익혔고, 한편 그들 자신이 깨우친 신앙을 간추린 교리서(≪聖敎要旨≫·≪主敎要旨≫등)216)≪聖敎要旨≫는 李檗,≪主敎要旨≫는 丁若鏞 등 한국교회 창설기의 지도적 교인이 편술한 간추린 敎理書이다. 등을 지어 유포시키며 포교에 힘썼다. 이러한 교리서를 붓으로 복사하는 그것 자체가 신앙의 실천이기도 하였다. 박해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이렇게 필사하여 유포된 여러 종류의 교리·신앙관계 서적이 다수 압류당하는 것을 보아도 그들 박해시대 교인들이 이와 같은 일에 얼마나 열성적이었나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교리서를 붓으로 베껴 쓰는 식의 초기의 교리서 유포는 우리 나라의 오랜 인쇄술 발달의 전통을 살려 목판인쇄에 의한 교리서의 간행으로 대량 보급시키게 된다. 고종 초에 조선교구장 베르뇌주교는 서울에 비밀리에 木版敎理書刊行所를 설치하고 全長雲·崔炯 등에게 운영을 맡겨 8종 13권의 교리서를 간행하여 유포시켰다.217)敎理問答 1권, 聖敎工課 4권, 禮規 2권, 神明初行 2권, 悔罪要旨 1권, 領洗大意 1권, 省察紀略 1권, 主敎要旨 1권 등 8종 13권. 그러나 이 일은 병인박해 때 관계자 모두가 순교하였기 때문에 계속되지 못하였다. 병인박해 후 남만주 챠쿠에 조선교구 임시해외본부를 두고 조선으로의 재진출을 위한 공작을 전개하고 있을 때, 리델주교는 장래를 위하여 일본 長崎에 근대적 활판인쇄시설을 설치하고 聖書活版所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 후 시대가 달라짐에 성서출판소를 서울로 옮겨 활판인쇄에 의해 성서와 교리서 발간에 힘쓰게 되었다(1888).

한글교리서의 유통은 신앙생활을 통한 한글보급에 크게 보탬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글문화상 주목할 일은 외국인 전교자들의 편리를 위하여≪韓佛字典≫과≪韓語文典≫이라는 서양언어와 한글의 사전과 서양문법론에 터전한 한글문법연구서가 간행된 일이다. 이들 귀한 한글연구서는 모두 조선교구 해외임시본부이던 만주 챠쿠에서 프랑스 성직자가 주동이 되어 이룩한 한글문화서이나, 1880년과 그 이듬해에 일본에서 출간되어 외국인의 한글학습에 크게 기여했다.218)이들 두 책의 저자는 라틴어로 ‘파리外邦傳敎會 韓國宣敎師’들이라고 적혀 있어 공동작업에 의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연구가 참조된다.
이응호,<≪한불자전≫에 대하여>(≪한글≫179), 133∼160쪽.
高永根,<19世紀 中葉의 불란서 宣敎師들의 韓國語 硏究에 對하여>(≪金亨奎敎授停年退任紀念論文集≫.
沈在箕,<Gramaire Coréenne의 硏究>(≪韓國天主敎會史創設二百周年紀念 韓國敎會史論文集 Ⅲ≫, 1985).

조선왕국의 개항과 개화정책에 따라 박해받던 ‘잠행적 지하교회’로부터 ‘현재적 지상교회’로, 근대적 신앙활동을 보장받게 된 한국천주교회는 전도활동을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자 근대적 개화의식의 계몽에 목적을 두고 1906년 10월에 한글판 주간지인≪경향신문≫을 발행하였다. 타부로이드판 4면과 국판 8면의 부록인≪寶鑑≫을 포함한 12면의 신문을 내게 된 것이다. 4면의 주간신문과 달리 부록인 보감은 창간호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 번 읽고 버리는 신문과 달리 신앙도리·교회지식·교회사와 더불어 법률상담 등을 실어 책으로 묶어 두고 요긴한 지식을 항상 익혀 생활에 활용하도록 꾸며진 민족계몽지였다. 순 한글로 된≪경향신문≫은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독자도 많아 1907년에는 독자가 4,2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보호정치하에 조선왕국의 실권을 장악한 통감부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洋大人으로 불리며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던 서양주교의 영향으로 4년간이나 발행을 계속하여 한글보급·사회계몽과 신앙전도에 크게 기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의 조선왕국 무력강점으로 식민지 무단정치가 시작되면서≪경향신문≫은 폐간당하였고 부록으로 간행되던≪보감≫은 일시 발간 정지되었으나 다음해≪경향잡지≫라는 이름으로 복간되었다.≪경향잡지≫는 24면으로 그 발행면수는 늘어났으나 전교적인 성격보다는 교리지식과 교회소식·교회사 등 기사로 채워지던 격주간지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러나 일제하에서도 천주교신자로 고정 독자를 현대적 계몽과 교리학습을 통한 한글보급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219)≪京鄕新聞≫은 일제 패망 후 일간지로 창간되었다(1946. 10. 6). 이 신문은 천주교회와 관계는 있으나 복간 성격을 띠지 않은 창간지였다. 한편≪寶鑑≫은≪경향잡지≫라는 제호로 복간되어 오늘날까지 발행되고 있다(1911. 1. 15).

이처럼 한국천주교회는 인쇄술·한글연구·언론활동을 통해 한국 근대사회에 기여한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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