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6권 신문화운동 Ⅱ
  • Ⅱ. 근대 종교운동
  • 4. 기독교
  • 3) 기독교와 민족의식
  • (2) 교회의 비정치화

(2) 교회의 비정치화

교도들의 근대적 민족의식이 성장하고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참여가 확대됨에 따라 교회의 정치적 발언권이 강화되었으며 이는 청일·러일전쟁을 통하여 한국의 식민지지배를 열강으로부터 사실상 승인 받은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선교사들로 하여금 교회가 ‘정치무대화’할 가능성을 예견하게 하였다. 세속과 종교를 분리하고 정치적 무관심의 靜肅主義를 기반으로 하는 복음주의자들271)閔庚培, 앞의 책, 148∼149쪽.이었던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한국교회의 이러한 상황전개는 비신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교회가 항일민족운동의 기지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미국계였던 당시 재한선교사들에게는, 일제의 한국지배를 사실상 승인 동조하고 있는 본국정부 외교정책에 배치되는 양상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1901년 장로회공의회는 ‘교회와 정부 사이에 교제할 몇 가지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에 대한 선교부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牧會書信 형태로 전국교도들에게 보내진 공의회의 결의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목사들은 대한나라 일과 정부일과 관원 일에 대하여 도무지 그 일에 간섭하지 아니하기를 작정한 것이요 대한국과 우리 나라들과 서로 약조가 있는데 그 약조대로 정사를 받되 교회일과 나라일은 같은 일 아니라 또 우리가 교우 가르치기를 교회가 나라일 보는 회가 아니오, 또한 나라일은 간섭할 것도 아니오 대한 백성들이 예수교회에 들어와서 교인이 될지라도 그 전과 같이 백성인데 우리 가르치기를 하나님 말씀 거스름 없이 황제를 충성으로 섬기며 관원을 복종하며 나라법을 다 순종할 것이오 교회가 교인이 사사로이 나라일 편당에 참예하는 것을 시킬 것 아니오 금할 것도 아니오. 또 만일 교인이 나라 일에 실수하거나 범죄하거나 그 가운데 당한 일은 교회가 담당할 것 아니오 가리울 것도 아니오 교회는 성신에 붙인 교회요 나라일 보는 교회 아닌데 예배당이나 교회 학당이나 교회일을 위하여 쓸 집이오 나라일 의논하는 집은 아니오 그 집에서 나라일 공론하러 모일 것도 아니오 또한 누구든지 교인이 되어서 다른 데 공론하지 못할 나라일을 목사의 사랑에서 더욱 못할 것이오(≪그리스도신문≫5-40, (1901. 10. 3)).

한국교회의 治理權을 장악하고 있던 공의회가 한국교회의 비정치화 원칙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은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교도들은) 그에 복종하여야 하며 국가에 세금을 바치고 순종해야 함을 가르치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성서의 구절을 인용하며 권력에 복종할 것을 강조하였다.272)선교사들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인용한≪신약성서≫구절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로마서>13장,<디모데전서>2장,<베드로전서>2장,<마태복음>17장·22장,<요한복음>18장(이만열, 앞의 책, 1992, 45쪽).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한 시기에 정치적 목적을 가진 민족주의자들이 교회를 통하여 국권수호운동에 임하자 선교사들은 직접적으로 이를 억압하기 시작하였다. 그 한 예로 감리회의 청년운동 조직인 엡웟청년회(Epworth League)는 감독 해리스(Bishop M. C. Harris)에 의하여 “(엡웟 청년회가) 여러 곳에서 교회의 목적을 왜곡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었으며 季朔會273)總會·年會·地方會·季朔會·堂會로 구성되어 있는 감리교회 의회조직 중 하나로 관할지역내의 교회소송사건과 주일학교 및 엡웟청년회의 업무를 관할하는 기구(基督敎文社,≪基督敎大百科事典≫Ⅰ, 1985, 648쪽).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그 단체를 세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외계분자들의 지배 밑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274)Annual Report of the Board of Foreign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06. p. 325(이하 M. E. Report로 씀).
白樂濬, 앞의 책, 368쪽.
는 이유로 해산되었다.

한국기독교는 수용 이래로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선교사들과의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대적 민족의식을 축적해 왔다. 이렇게 축적된 민족적 역량은 합병 이후 기독교가 민족해방운동 선상에서 응분의 기여를 할 수 있었던 한 동인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민족문제를 둘러싼 민족주의자들과 선교사들의 입장의 차이는 한국기독교 발전과정의 한 갈등 요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기독교도들의 민족의식을 계발하고 교도들의 의식을 근대화하는 데 기여한 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기반에서 다음에 살피고자 하는 선교사들의 주도로 추진된 근대화·개화운동과 그 역사적 성과가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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