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에 들어와서는 점차 양식건물의 건립이 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의 종교계통·주거계통·외교계통 이외에도 각종 회사의 사옥·병원·호텔 등이 건립되었다.
그런데 건축활동 중 주목되는 것은 한·양절충양식의 건물들이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1900년대 평양의 장로교회, 1906년의 화산천주교회(사적 318호)516)金 珠, 앞의 책, 31∼34쪽.
주남철, 위의 책, 356∼358쪽. 등은 바로 한국 전통건축의 요소들을 최대한으로 새로운 기능의 양식건물에 발휘한 예라 할 수 있다. 또 서울 雲從街 즉 지금의 종로에는 목조 2층의 한양절충식 상점건물들이 즐비하게 건립되었던 것이다.
1906년부터 벌써 지금의 남산 예장동의 왜성대에 있던 통감부가 총독부의 청사를 경복궁 근정전 앞 홍례문과 외행각을 헐고 건립하려 하였다. 이 총독부청사는 경복궁의 癸坐丁向의 중심축을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그 중심축을 子坐午向으로 하였는데, 1926년에 완공을 보았다.517)國立中央博物館,≪舊朝鮮總督府建物≫(1997).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에 착공하여 건립하게 된 건물들은 대부분 양식건축의 직접적인 이식보다는 일본인들에 의하여 채택된 절충주의적인 양식건축이었음이 대표적인 건물별로 살펴보겠지만 주목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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