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3. 식민지 지배체제의 특질
  • 1)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주의
  • (2) 회유정책에 의한 민족개량화기(3·1독립운동∼중일전쟁)

(2) 회유정책에 의한 민족개량화기(3·1독립운동∼중일전쟁)

 주지하다시피 거족적이고 전국적인 3·1독립운동의 발발은 일제의 무단적 통치방식이 한계에 부딪혀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국면의 전환을 위하여 기존의 통치방식과 지배정책을 수정하였다. 천황은 조서를 통하여 시혜적인 ‘一視同仁’을 천명하였고 수상 하라 사토시(原敬)는 무차별의 ‘내지연장주의’의 통치방침을 공표하였다. 관제를 개정하여 총독의 군통수권을 폐지하여 출병요구권만을 부여하였고 무단통치의 상징인 헌병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바꾸었다.194)<朝鮮總督府 官制>(1919. 8. 20. 개정·공포, 칙령 제386호). 경찰관서는 독립적 존재로서 총독부의 外局이었으나, 1919년 관제개정 때<朝鮮總督府 警祭官署官制>를 폐지하고 內局에 편입시켰다(日本外務省 條約局 法規課,≪日本統治時代の朝鮮≫, 1971, 163쪽). 그리고 현역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총독을 인책·경질하여 해군대장 출신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신임총독으로 임명하였다.

 사이토 총독은 부임하자마자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민심수습에 나섰다. 조선어신문 발행허가는 사전검열제라는 법적 장치를 전제한 것으로, 민족분열과 사회적 지도엘리트 특히 민족부르주아지에 대한 개량화를 획책하면서 회유책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문화창달’이라는 것은 전통적 문화와 관습을 파괴하여 ‘문화적 일본화’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조선사 정립’이라는 것은 조선사를 왜곡시켜 일본사의 한 지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 속에 획책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195) 일제는 1922년 12월<총독부 훈령>(제64호)으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하였으나 1925년 6월<칙령>(제218호)으로<朝鮮史編修會官制>를 공포하여.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관청으로 승격시켰다. 이 편수회에서 1938년 현재까지≪朝鮮史≫(35권),≪朝鮮史料叢書≫(20종),≪朝鮮史料集≫(3질)을 발간하였다(朝鮮總督府 朝鮮史編修會,≪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 1938). 교육제도 개혁을 통한 교육의 문호개방은196) 朝鮮總督府,≪施政三十年史≫(1940), 202∼208쪽. 일본어 보급과 정신적 동화를 전제로 하여 ‘황민화’된 식민지 관료(교사 포함)와 농촌지도자를 포함한 전문기능인을 배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197) 橋谷弘,<1930∼1940年代の朝鮮社會の性格をめぐって>(≪朝鮮史硏究會論文集≫27, 1989). 이 ‘문화정치’의 본질은 민족말살주의의 범주 속에서는 민족문화말살책이고 또한 민족의 상층 및 중간계층에 대한 개량화정책이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다.198) 姜東鎭,≪日本の朝鮮支配政策史硏究≫(東京大 出版會, 1978).

 이 시기에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지방자치제’의 실시였다. 일제는 1920년에 지방제도를 대폭 개정하여 府·道·面에 의회·협의회 등의 의결기관·자문기관을 설치하였다. 이것은 제한선거 혹은 간접선거로 구성되는가 하면 그 자격과 기능에서도 자치제도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는 등, 형식과 내용 모두 자치제 본래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것임은 주지하는 바이다.199) 孫禎睦,≪韓國地方制度·自治史硏究≫上(一志社, 1992).

 이 의사적 지방자치제는 경제적 지배계급으로서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정치적 지배계급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대책이었고,200) 지방세 5원 이상 납부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제한선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본인의 진출이 압도적이다. 의결기관인 부회 및 읍회의 1931년 선거결과를 보면, 부회(14개 부)는 일본인이 62%, 읍회는 일본인이 49%를 차지하고 있다(≪大野綠-郎文書≫No. 1280,<朝鮮·臺灣人の參政權に關する參考資料>). 병합 이래 ‘참정권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하여 온 附日세력 및 개량주의자들의 불평·불만을 무마하고 회유하기 위한 방책의 일환이었다.201)≪大野綠一郞文書≫, No. 1281,<參政權問題>. 그런데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민족적 저항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민족개량화정책을 최하위의 지방단위에까지 관철시켜 지방의 경제적 상층계층까지도 지배기구속에 포섭하여 지지기반으로 삼고자 하였고 그러한 소기의 목적이 충족되고 있었다는 점이다.202) 1920년 제1회 부회 선거는 지방세 납부 5원 이상의 제한선거이었기 때문에 조선인 거주자에 대한 조선인 유권자의 수의 비율은 1.17%이다. 지정면(24개월 후에 읍으로 개칭)의 협의회 선거에서는 납부액을 2원 혹은 4원으로 각각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수의 비율은 0.79%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각각의 지방에서 극히 상층 계층의 인사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孫植睦, 앞의 책, 204∼205쪽).

 1930년을 전후한 세계공황의 여파는 식민지 지주제의 필연적 결과로서 나타나는 농민층의 하향분해를 더욱 가속화시켜 농촌의 궁핍화는 식민지 지배를 위기로 몰아넣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203) 朝鮮總督府,≪施政三十年史≫303쪽에, “반도 총인구의 약 8할은 농민에 의해 점해지고 있는데 이들 농민의 약 8할은 細農계급으로서 … 소위 춘궁기에는 야생의 초목에 의해 겨우 일가가 입에 풀칠하는 상태에 있다”라고 기록될 정도였다. 거기에다, 이러한 경제적 한계상황은 민족해방운동의 고양, 민중의 민족적 각성 등과 결부되어 소작쟁의·노동쟁의의 형태를 통한 생존권 투쟁이 가열차게 전개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육군대신에서 조선총독으로 자리를 바꾼 육군대장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는 ‘내선융화’를 표방하면서 종래의 민족개량화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우선 긴급한 현안인 ‘수탈을 위한 최소의 생존’의 조건을 구축하기 위하여 궁핍농가의 자급자족을 명분으로 하는 ‘농촌진흥운동’ 정책을 펼쳤다.204) ‘농촌진흥운동’의 실시상황과 성격에 대해서는, 宮田節子,<1930年代日帝の朝鮮における農村振興運動の展開>(≪歷史學硏究≫297, 1965). 그러나 궁핍화의 근본원인인 토지소유관계를 개혁하는 것도 아니었고 소작권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책임은 농민들 스스로에게 전가되었고, 거기에서 그 구제책으로서 부업장려와 ‘사회교화’를 통한 ‘자력갱생’의 방안이 제시될 따름이었다. 결국 이 운동은 기만적인 농민회유책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총독부 당국은 이 운동을 추진하는 데 지방의 지주나 유지들을 앞장세우지 않고, 새로 커 나오는 보통학교 졸업자를 선정, ‘중견인물’로 교육시켜 전위적 역할을 담당케 하였다. 이것은 곧 식민지 지배를 떠받치는 새로운 세력으로서 농촌의 중간계층 출신의 청소년들을 ‘황민화’시켜 양성할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농촌의 파탄은 농민의 궁핍화뿐만이 아니라 과잉인구를 누적시켰다. 여기에서 만주로의 자연이동이 급증하게 되는가 하면 만주침략의 첨병으로 조선인을 활용하는 정치적 의도와 함께 과잉인구 해소책으로써 조선인의 만주방출이 정책적 차원에서 추진되었다.205) 조선인의 만주이민에 대해서는, 이형찬,<1920∼1930년대 한국인의 만주이민 연구>(한국사회사연구회,≪일제하 한국의 사회계급과 사회변동≫, 문학과 지성사, 1988). 일제는 만주국을 세우고 나서, 조선의 과잉인구를 해소하고 아울러 조선인을 이용하여 ‘만주개발’을 도모할 목적으로 정책적 차원에서 만주에의 집단 이민을 획책하였다(朝鮮總督府,≪朝鮮の狀況≫, 1941, 271∼277쪽). 그리고 자원수탈과 군수공업화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北鮮開拓’ 사업에 남쪽의 농촌과잉인구를 이주시켜 활용하였다.206) 총독부는 ‘북선개척’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①남북 조선인의 인구조절, ②富庫의 개척, ③조선인의 북향발진, ④內地(일본)도항자 감소, ⑤만주 진출의 발판 구축(<統治沿革:第6代 字垣 總督時代>,≪朝鮮年鑑≫, 京城日報社, 1942년도 판).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 농업공동체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함과 동시에 자립적 주체로서의 농민을 공동체로부터 유리시켜 비자립적이고 이온적인 개체로 전락시켰다. 이것은 또한 조선에 일본의 하층 농민을 이주시키고 조선인을 만주에 방출하여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거주하게 하는 혼거정책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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