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경영은 인적자원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경우 인도를 통치하면서 식민지인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을 도식화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식민지형 인간을 창출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식민지를 경영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을 마련하여 절대적인 협력은 아닐지라도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잠재적 세력의 흥기를 제거하는 데 있었다.

 3·1운동 이후 ‘신정치’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일제도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세력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른바 ‘친일파’ 생산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여 이들로 하여금 식민지인을 대리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의 완비를 추진하였다. 지금까지 친일파 연구는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나치게 식민지 조선인을 재단한 느낌이었다. 즉 친일=매국노, 저항=애국자라는 등식 속에서 친일의 속성 및 친일파 생산의 구조적 특징에 대한 부분을 간과한 점 또한 없지 않다.100)친일파 연구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구가 주목된다.
임종국,≪일제침략과 친일파≫(청사, 1982).
姜東鎭, 앞의 책.
朴慶植, 앞의 책.
高崎宗司,<朝鮮の親日派>(≪近代日本と植民地≫6, 岩波書店, 1993).
민족문제연구소,≪한국 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2000).
따라서 일제시기 친일파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친일’(=적극적인 동조 내지 동화), ‘협력’(=소극적인 동조)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101)박섭, 앞의 책, 43∼73쪽.

 먼저 ‘친일’은 대한제국기의 친일과 좀더 차별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친일은 제한된 정치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자신의 영달을 위해 총독부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동화되었음을 의미한다.102)동화주의의 특징은 제한적인 폭력과 제한적인 정치참여를 가장하는데 있다. 즉 저항세력에 대해서는 제한적이며 극단적인 방법으로, 식민통치에 협력하는 부류에 대해서는 일정한 리베이트를 제공하였다.

 또한 친일에 대한 개념화 작업에서 가장 많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정치세력이었다. 이를테면 개항 이후 親美·親淸·親露·親日이라는 것은 쇠약해진 국체의 주도층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반대세력을 거세시키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친일’이라는 개념은 국체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 강탈된 상태에서 그 이전 시기와 구분하여 반민족적인 분위기를 퇴색시킬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즉 첫째 이미 대한제국에서 조선총독부로 권력의 핵심이 이동되었기 때문에 조선인이라고 할지라도 ‘친일한다’라고 하는 것이 큰 수치심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103)朴成眞, 앞의 책, 142쪽. 일제는 이를 통해 조선의 민족적 차별 및 계급적 차별화를 더욱 심화시켜 민족분열로 이끌어나가 민족의 주체성 및 정체성을 말살하고자 하였다. 둘째 조선인으로서 신분적 상승을 위하여 선택한 순수하고 정치적인 결단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104)≪新韓民報≫, 1920년 9월 2일,<치욕적인 신일본파의 장두>. 즉 조선인의 친일은 일제의 지배정책에 기인한 것도 사실이지만 조선인 내부의 계층적 질서가 함의하고 있었던 모순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105)김동명,<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의 정치운동 연구>(≪한국정치학회보≫32, 1998) 참조.

 친일을 “남보다 먼저 일제의 통치정책에 영합하고, 나아가 내선일체를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목표로 인식하여 행동한 것”이라고 규정할 때, 일제의 조선 침략에 따라 기생하여 나타난 정치세력은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식민지 구성원에 대한 민족분열을 담당하고 나아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기생하여 자신의 영달을 목적으로 생을 영위한 자를 친일파라 한다.

 한편 식민지 조선의 내적 발전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일제와 타협하여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는 친일파에 대하여 협력자라는 개념을 부여하기도 하였다.106)이 문제를 더 확대하면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여기서는 범위를 한정하여 서술하였다. 일제강점기 정책주체인 조선총독부 및 일제가 식민지인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면 그 객체는 누구인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객관적인 조건하에 수세적 입장에 있었던 식민지인 가운데 기업가의 경우가 정치세력보다는 친일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즉 식민지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 조선총독부와 타협하지 않으면 기업활동을 진행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와 같이 친일과 협력의 공통점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하여 별다른 저항을 표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물론 내적인 자기갈등은 있을지라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여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적어도 해방 이전에는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특히 1931년 이후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오히려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상전환을 획책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은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의 자기발전을 위해서 조선총독부 및 일본제국주의의 통치정책에 야합하여 조선인에 대한 감시·탄압과 정체성의 상실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의 국체를 부정하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동화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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