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의열투쟁’은660)‘의열투쟁’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75년에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독립운동사≫제7권으로≪의열투쟁사≫를 펴내면서부터였다. 의사와 열사라는 역사적 인물형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사적 기개로써 의로운 일의 실행에 용맹과감하게 나섰음을 강조하면 의사라는 호칭이 붙고, 대의를 좇아서 죽음의 길로 감연히 뛰어들었음을 강조하면 열사라는 호칭이 붙는다. 전자의 행위가 대체로 무기를 가지고서 대적거사를 벌이는 것으로 구체화된다면, 후자의 행위는 맨손의 항거나 자결로써 충절과 의분을 드러내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小我를 버리고 義를 취하며 자기희생을 마다않거나 자진해서 택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661)그래서인지 중국에서는 전자의 경우도 ‘열사’로 통칭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열’이란 生死不顧의 정신이 낳은 행동의 의로움과 그 행위에 뒤따르는 희생의 장렬함을 함께 기리는 뜻을 담은 용어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의미의 의열행위 양식은 일제 강점기 훨씬 이전에 생성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항쟁이나 論介의 행동이 다 그런 속성의 것이었다. 갑오년(1894) 이래의 반일 의병투쟁도 그 계선에 놓이면서 의열의 전통을 잇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전통은 한말에 와서 크게 꽃을 피웠다. <을사늑약>의 체결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일어난 후기 의병진들, 국운의 쇠퇴를 통탄하며 일본의 침략 야욕에 자결로써 항의한 전·현직 관료와 유생 및 군인들, 을사5적과 침략 원흉 및 침략행위 부조자를 암살 응징했던 奇山度·羅喆·吳基鎬·張仁煥·田明雲·安重根·李在明 등 여러 의사들의 행동이 의열의 전통을 되살린 것이다. 대한제국이 1910년에 일본에 강제 합병되자 많은 재야유생들이 잇따라 자결한 것 역시 그와 같은 선상에서 망국의 절통함을 표한 방식이었다.

 강점 이래 10년간의 일제 무단통치가 국토를 하나의 거대한 감옥처럼 만들어 짓누르고 있던 속에서도 여러 비밀결사와 그 성원들의 지하활동을 통하여 항일투쟁의 의지와 동력은 계속 재생산되었다. 특히 친일부호 처단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大韓光復會의 ‘義俠鬪爭’은 한말 의열투쟁의 정신과 방법을 부분적으로 재생·발전시킨 것임과 동시에, 3·1운동 이후의 의열투쟁의 한 원형이자 수원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3·1운동 이후의 의열투쟁은 한말의 그것과는 초점과 의미구조가 사뭇 달랐다. 자결로써 의분을 표하는 것과 같은 행위양식이 사라지고, 그 대신 상황변개의 의지가 짙게 투영된 공격적 거사로 투쟁의 내용이 거의 채워진다. 다음으로, 단발적·일회적 개인거사의 수준을 넘어선, 집단적 차원의 연속적 거사가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잡아 투쟁의 지속성을 담보해 간다. 그래서 의열투쟁은 이제 산발적인 항일행동의 단순집합 개념이 아니라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독립운동의 한 ‘방략’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된다.

 이리하여 의열투쟁은 개인 또는 집단의 감투정신과 희생정신으로 뒷받침된 공격적 거사 양식의 독립투쟁이라는 것으로 그 의미가 굳어지게 된다. 의열거사의 규모가 확대되고 수단이 다변화하며 내용이 풍성해지는 추세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의열투쟁의 본격화와 궤를 같이한다. 1920년대 초에 ‘작탄투쟁’이나 ‘암살파괴운동’과 같은 용어가 새로 만들어져 널리 쓰이게 된 것도 그런 맥락에 비추어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다. 3·1운동 직후에 암살파괴운동의 선도자를 자임하며 탄생한 한 단체가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662)朴泰遠,≪若山과 義烈團≫(白楊堂, 1947), 27쪽.할 것이라 공약하고, 그 ‘정의’와 ‘맹렬’에서 한 자씩 따서 자기의 이름으로 삼음을 언명한 것-어쩌면 역설처럼 느껴질 법한 이 논리연관 짓기도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었지, 그저 우연의 소치이거나 혼자만의 억지였던 것은 아니다.

 이제 폭력과 정의가 한몸이 될 수 있었던 우리 역사의 한 시기와 여러 국면을 찬찬히 살펴볼 차례이다. 하지만 지면상 개별 사례들을 강조하거나 부각시키기보다는 전체의 흐름 속에 그것들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서술해 갈 것이다.

<金榮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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