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1927년 북경에서 결성된 의열단체 韓國革命黨總同盟은 1928년 천진에서 일제주구 李泰華를 처단했고 1930년에는 천진의 일본은행을 습격하여 거금을 탈취하였다. 만주국이 건립된 직후인 1932년 주만 일본전권대사 무토(武藤信義) 대장 암살과 관동군사령부 폭파를 계획하고 孫基業 등 4명은 장춘·봉천 등지로 무토의 뒤를 밟으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폭탄과 총기를 휴대하고 있음이 장춘에서 발각되어 전원 피체됨으로써 거사는 좌절되었다.744)蔡根植,≪武將獨立運動秘史≫(大韓民國公報處, 1949), 188∼189쪽.
金承學,≪韓國獨立史≫(獨立文化史, 1967), 414∼415쪽.

 일찍이 의병전쟁과 3·1운동에 참여한 후 서간도로 망명하여 줄곧 독립운동의 길을 걸어 온 여성투사 南慈賢도 1933년 봄에 新京(長春의 새 지명)의 만주국 건국 기념식장에서 일본대사 무토오 등을 폭살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동지 李圭東과 함께 거사준비에 임하였는데, 거사 예정일을 며칠 앞둔 2월 말에 신경 교외에서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62세의 노구로 수감된 그는 단식투쟁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서거하였다.745)朴永錫,<南慈賢義士의 民族獨立運動>(≪韓國學硏究≫2-別冊, 淑明女大, 1991),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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