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2. 신간회운동
  • 4) 지회의 설립과 활동
  • (1) 지회의 설립

(1) 지회의 설립

 1927년 2월 15일 신간회가 창립된 후 전국에 산재되어 있던 청년·사상·노동·농민단체 등은 신간회에 대해 지지·후원을 표명하거나 신간회 창립을 위해 자진 해체 또는 통합하였다.327) 이들 각 지방 부문단체들이 신간회를 지지·후원하는 가장 큰 까닭은 그 당시까지 존재했던 사상단체의 해체, 각 단체 사이의 파벌 해소를 통한 전선 통일 등이었다. 1927년 2월부터 6월까지 신간회에 대해 지지·후원을 표명한 단체는 京城仁旺靑年會·고성청년회·상주청년회·영흥청년회·전북청년연합회·평양청년동맹·하동청년회·호남4단체연합간담회·함남 靈武靑年會·함평청년연합회 등 외에도 상당수였다(이균영, 앞의 책, 230∼231쪽 참조). 신간회의 지회 설립은 이러한 각 지방 단체들의 움직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세를 바탕으로 신간회의 지회조직은 10개월 후인 1927년 12월 27일 지회 100개 돌파 기념식을 치를만큼 급속도로 확산되어 갔다.328) 신간회 지회의 활동과 조직문제에 관한 연구는 아래와 같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한 지역의 지회를 중심으로 논점을 전개하고 있다. 반면, 이균영은 신간회 지회 전체를 대상으로 연구를 함으로써 지회 연구의 지평을 개척하였다.
스칼라피노·이정식,≪한국공산주의운동사≫1(돌베개, 1996).
水野直樹,<新幹會 東京支會の活動について>(≪朝鮮史叢≫1호, 1979).
강정숙,<일제하 안동지방의 농민운동에 관한 일연구>(≪한국 근대 농촌사회와 농민운동≫, 열음사, 1988).
신용희,<신간회 지회활동에 관한 연구-조선일보 기사분석을 중심으로>(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이준식,≪농촌사회 변동과 농민운동-일제침략 함경남도의 경우≫(민영사, 1993).
李均永,≪신간회연구≫(역사비평사, 1993).
강재순,<신간회 부산지회와 지역사회운동>(≪지역과 역사≫1, 부산경남역사연구소, 1996).

 신간회지회는 1927년 12월 말까지 104개, 1928년 2월 15일까지 123개, 1929년 2월 15일까지 144개에 달하였고, 1929년 11월 현재 127개였으며,329) 1929년 6월 複代表大會 결과 성립된 許憲 중앙집행위원장 시기에 문제지회 20여 개가 정리된 결과 1929년 11월 현재 지회수는 127개가 되었다. 해소 당시의 지회수는 124∼126개에 달하는 등 신간회 지회는 거의 전국으로 확산·조직되었다. 이러한 지회 설립상황을 연도별·지역별로 정리해 보면<표 2>와 같다.

 한편, 신간회지회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1927년 5월부터였다. 그리고 1927년 12월에는 17개의 지회가 설립되어 가장 높은 지회 조직율을 나타냈다. 또한 1927년 6월부터 1928년 3월까지는 매달 5∼17개의 지회가 설립되어 신간회지회 설립이 가장 조밀하게 나타나는 시기였다. 그러나 1928년 4월을 기점으로 신간회의 지회설립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지회설립이 급감한 이유는 1928년 2월부터 8월까지 계속된 일련의 조선공산당 검거사건과 그에 따른 日警의 강력한 탄압, 그리고 지회 설립요건을 갖춘 지역들이 1928년 3월 이전 대부분 지회를 결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연도
지역
1927 1928 1929 1931 설립 불명 기 타
강원 원주 양양 강릉 고성 삼척     양구 춘천 7 伊川 철원
경기 경성 개성 광주 수원
안성 인천
京西 강화 京東 長湖 廣興 용인 양주 13  
경남 사천 마산 부산
거창 고성 진주 창원
하동 함안 함양 합천
밀양 삼천포 거제도
김해 울산 통영
동래 양산
기장 의령     21 창녕
경북 김천 포항 칠곡 봉화
안동 영양 영주 고령
대구 상주 영덕 예천
선산 울진 영천
군위 영해 경주
하양 경산
      20 문경 청도
청송 풍천
전남 함평 구례 목포 벌교
장흥 영암 완도 나주
광주 장성 강진
순천 담양 송정
영광
광양   제주 17 고흥 綾州
兵營 右水
전북 정읍 전주 군산 임실
禾湖 김제 남원
순창 부안     옥구 10 익산
충남 홍성 공주 예산 당진 서산 천안     부여 7 강경 대전
논산
충북 괴산 음성 청주 진천 충주       5 영동
평남 안주 진남포 평양         3 개천 중화
평원
평북 선천 곽산 용천 철산 박천 의주
신의주
    龜城 8  
함남 북천 원산 함흥 문천
단천 홍원 덕원 정평
영흥 안변
  이원   신포 12 신흥
함북 나남 길주 회령 성진
주을 명천 온성 청진
漁州
웅기 청암   경성 12 신아산
종성
황해 웅진 해주 재령 연백
장연
南川 황주 金川
白川 사리원
      10  
일본 東京 京都 大阪   名古屋     4  
중국           0 용정 연변
96 34 8 1 10 149 24

<표 2>신간회지회 연도별 설립 상황

비고:기타항목은 지회설립을 신청하여 본부로부터 승인받았거나, 설립준비위원회가 개최되었거나, 설립대회가 일시 금지된 경우로서 그후 설립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며 활동사실도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신간회의 지회설립과정은 대개 각 지역에 신간회설립준비위원회나 신간회발기위원회 등을 구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의 활동에 의해 30명 이상의 회원이 모집되면 신간회본부에 지회설립을 신청하였고, 이를 본부가 승인하면 설립대회 개최일자를 확정하였다. 설립준비위원회나 발기위원회는 대부분 그 지방에 존재하던 각 부문단체들의 지지나 후원에 의해 조직되는 경우와 각 단체들 중 하나 혹은 단체간 연합에 의해 조직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지역은 영광·마산·김해·고성·함흥·북청·원산·동래·장성·김제·단천지회 등이었다. 그런데 각 지역의 연합·구성된 단체들을 중심으로 신간회지회 설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 지역에서 청년운동·노동운동·농민운동 등 각 부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왔음을 뜻하며, 그 중심역할은 청년단체가 주도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경기도 廣州의 송파청년회·장성청년연맹·순창청년회·합천청년회·괴산청년회·남원청년동맹 등을 들 수 있다.330) 안건호·박혜란,<1920년대 중후반 청년운동과 조선청년총동맹>(≪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 풀빛, 1995), 120쪽.

 한편, 지회설립과정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역할한 것은 지방신문기자들이었다. 때문에 신간회지회설립준비위원회가≪조선일보≫·≪동아일보≫·≪中外日報≫의 지국 사무실에서 개최되거나 준비위원회 사무실로 활용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광양·영광·마산·목포·합천·김천·포항·칠곡·대구·청주·固城 등 24개 지회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며, 설립이 이루어졌던 149개 지회 중 16%에 이르는 비율이었다. 또한 신간회지회에서 지국장을 포함한 지방신문기자들의 비중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복대표의 구성이었다. 각 지회에서 핵심세력으로 역할한 이들 복대표 32명 중 지방의 신문지국장이나 기자가 孔錫政·徐世忠·孫永極·安喆洙·呂海·林載淳·丁洙泰·趙致基·崔允鈺 등 9명이었다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이것은 지회에서 신문기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신간회운동에서 구심적 역할을 한 것은 지식인들이었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간회지회의 설립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경은 신간회지회 설립을 갖가지 이유를 들어 탄압하였다. 거제도·울산·白川·통영·김해·양산의 경우는 설립대회를 금지당한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 끝에 지회를 설립하였으나, 익산·논산·양주 등은 경찰의 탄압으로 지회를 설립할 수 없었다. 특히 1930년에는 전국적으로 단 한 곳도 지회를 설립할 수 없을 정도로 경찰의 탄압은 극심하였다.331) 이러한 지역은 경원의 新阿山·价川·청송·영동·新興·철원·종성·대전 등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간회지회는 거의 150여 곳에 달할 정도로 전국적인 조직망을 건설하였다. 그 회원수는 창립 1주년이 되는 1928년 2월 15일 현재 2만여 명이었으며, 1929년 3만여 명, 1931년 5월 해산 당시에는 4만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신간회에 거는 민족적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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