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4) 농민운동의 전개
  • (1) 1920년대 전반기

(1) 1920년대 전반기

 1920년대 농민운동은 소작쟁의, 수리조합 반대운동, 화전민 항쟁, 곡물 검사제 반대운동, 조선농회 반대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376) 淺田喬二,≪日本 帝國主義下の民族革命運動≫(東京:未來社, 1973).
노영택,<농민운동>(≪한민족독립운동사≫9, 국사편찬위원회, 1991).
이를 전개 양상에 따라 크게 1920년대 전·후반기로 나누어 살펴보자.

 우선 1920년대 전반기는 1920∼1925년의 시기로 농민운동의 대두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농민운동은 대지주를 앞세운 일제의 농민지배와 수탈정책에 소작농민이 직접 투쟁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즉 소작쟁의가 주류를 이룬 것이다. 소작인조합이 중심이 된 소작쟁의는 주로 소작료 인하와 소작권 이동 반대 투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지주의 수탈에 대항한 소작료 인하 투쟁이 초기 소작쟁의의 주된 요구였지만, 지주가 고율 소작료 징수를 무기로 소작권을 악용함에 따라 1923년부터는 소작권 이동 반대투쟁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377) 김용달,<일제하 토지혁명론의 배경과 전개>(≪북악논총≫8, 국민대 대학원, 1990).

 또한 소작권 이동 반대투쟁은 산미증식계획에 의해 희생되기 시작한 자작농과 자소작농이 순소작농으로 몰락함에 따라 농업예비군이 증가하면서 야기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주가 교묘한 방법으로 소작농민의 경쟁을 유발시켰고, 이러한 갈등구조는 지주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대신 상대적으로 소작농민의 노동강화와 권리 위축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소작쟁의의 발생건수는 1920년 15건, 1921년 27건, 1922년 24건, 1923년 176건, 1924년 164건, 1925년 204건 등이다. 그리고 수리조합 반대운동은 1921년 2건, 1922년 3건, 1923년 7건, 1924년 5건, 1925년 5건 등이 발생하였다. 소작쟁의 및 수리조합 반대운동 또한 1922년 7월 조선노농공제회의<농민문제선언>직후 폭발적 증가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인 농민운동은 전북 익산·김제 농민의 수리조합 반대운동(1921), 전남 무안군 암태도 소작쟁의(1924),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여물평 동양척식주식회사 농장의 소작쟁의(1924∼1925) 등이다. 쟁의양상은 주로 합법적·온건적 경제권익투쟁의 범위 내에서 진행되었지만, 때로는 격렬하게 전개된 것도 있었다.

 예컨대 1921년 9월 전북 익옥수리조합 반대운동은 농민운동의 결집력을 보여 주는 투쟁으로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익산·김제군 내 5,000여 농민들이 益沃수리조합의 취수로가 기존의 배수로를 차단한 것에 반대하여 격렬하게 항의한 운동이다. 즉 익옥수리조합의 수리구역 내 일본인 지주들이 토지개량을 위해 취수로를 내면서 조합구역과 관계없는 김제·익산지역의 기존 배수로를 차단함으로써 침수피해의 위험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배수로 차단에 반대하여 5,000여 명의 익산·김제군 농민들은 조촌주재소 앞에서 수리조합 반대투쟁을 전개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한 것이다. 이 수리조합 반대운동은 산미증식계획이 일본인 지주의 권익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데 대항한 운동으로 의미를 갖는다. 그러면 1920년대 전반기 대표적 소작쟁의인 암태도 소작쟁의와 북률 동양척식주식회사 농장 소작쟁의의 전개양상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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