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2. 노동운동
  • 1) 노동운동 전개의 배경
  • (2) 사회주의의 보급

(2) 사회주의의 보급

 1920년대 노동자계급의 민족해방과 계급해방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조선에 급속히 보급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1917년 11월 17일 사회주의 10월 혁명은 러시아에서의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해방 특히 피압박 민족들의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10월 혁명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는 모든 피압박 민족과 피압박 대중들의 해방사상이 되었다. 둘째 조선에서의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통치로 말미암아 민족적·계급적 모순이 극도로 첨예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민중들은 민족적 독립과 계급적 해방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도를 사회주의에서 찾았다. 셋째 1920년대 이후 노동자계급의 양적인 성장과 노동운동의 발전은 사회주의 보급의 광범한 기반이 되었다. 넷째 전민족적인 3·1운동을 통하여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와의 대항에서의 무기력성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반제국주의 사상으로 사회주의를 요구하게 되었다.387) 김인걸·강현욱,≪일제하 조선노동운동사≫(일송정, 1989), 7∼16쪽.

 처음에는 조선에서의 사회주의의 보급은 주로 국외의 ‘사상단체’들의 활동에 의해서였다. 1910년대 말에 소련 원동지방과 이후 중국의 상해와 만주 등지에서 조선인 사회주의사상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했다. 이러한 사상단체들은 ‘민족적 독립’과 무산계급 해방을 위하여 사회주의사상의 보급에 적극 노력했다. 해외의 조선인 사회주의사상단체들은 마르크스(Karl Marx)-레닌(Lenin)의 저작들과 그에 관한 해설서들, 각종 신문과 잡지들을 출판해 비밀리에 국내에 침투시켰다. 일제 경찰이 1924년까지 압수한 것만도 50여 종에 달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발행한 비공개 자료인<언문 및 언한문의 적화선전용 간행물 일람표>(1922년 발행)·<조선에 있어서의 출판물 개요>(1930년 발행) 등을 보면 1920∼1926년 간에 해외로부터 조선에 들어온 주요 신문·잡지들과 단행본들은≪동아공산신문≫·≪노동신보≫·≪노동세계≫·≪붉은 별≫·≪붉은 기≫·≪선구≫·≪노동운동≫·≪효성≫·≪전위≫·≪여자해방≫·≪조선혁명≫등과 단행본들인≪공산당 선언≫·≪칼 마르크스≫·≪레닌≫·≪러시아공산당 강령≫·≪우리 무산계급의 진로≫·≪노동조합 이야기≫·≪새 세상이 되면≫·≪공산독본≫·≪토지문제≫·≪세계 무산자를 단결 시키라≫등이었다.

 국외에서 활동하던 사상단체들은 192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부터 사회주의 선전사업을 위하여 그의 선전원들을 국내에 파견했다. 이것은 이 시기 국내에서 발간된 합법적 출판물에도 반영되어 있다. 즉<공산주의 선전 목적으로 4명 신의주 방면에 침입>·<경성에 공산당원 비밀중에 교묘히 선전>·<국경 방면에서 공산주의 선전원이 변장하고 경성에 잠입하여 공산주의 선전>·<공산당 선전원 체포 … 행장 속에서 선전문이 다수 발각>등의 기사들은 국내에서의 마르크스주의 선전원들의 적극적 활동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출판된≪자본론≫을 비롯한 사회주의 고전들이 조선의 선진적 인텔리들에 의해 연구되고 보급되었다.388) 김인걸·강현욱, 위의 책, 19∼20쪽.

 한편 국내에서도 사회주의 서적들이 조선어로 번역되어 출판·보급되었다. 마르크스의≪임금노동 및 자본≫(1923년 발행)·≪가치, 가격 및 이윤≫(1923년 발행)을 비롯한 고전들과≪맑스의 유물사관≫(1922년 발행)·≪맑스 사상의 진상≫(1924년 발행)·≪사회주의 대의≫(1925년 발행)·≪통속 사회주의 경제학≫(1925년 발행) 등의 마르크스주의 해설서들이 단행본으로 출판·보급되었다. 사회주의는≪공제≫(1920. 9∼1921. 6)·≪신생활≫(1922. 3∼1923. 8)·≪조선지광≫(1922. 11∼1933) 등의 잡지와 기타 각종 신문들을 통해서도 소개·선전되었다. 이 잡지들은 국제노동운동에 관한 자료들과 소련의 사회제도를 소개하는 자료들을 게재했으며, 인민대중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반봉건적 민주주의사상을 고취하는 일련의 논설들을 실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서 조선의 산업중심지와 주요 도시들, 기타 각 지방들에서는 선진적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에 의하여 사회주의사상단체들이 수많이 조직되어 비밀리에 활동했다. 1920년대 전반기에 조직되어 활동한 사회주의사상단체들로 서울의 ‘신사상연구회’·‘북풍회’ 등과 평양의 ‘독서회’, 마산의 ‘혜성사’, 영흥의 ‘삭풍회’, 성진의 ‘신인회’, 안동의 ‘화성회’, 나주의 ‘효종단’, 대구의 ‘신사상회’, 진영의 ‘배수회’, 해주의 ‘사회사상 연구회’ 등이 있었다.

 그러면 1920년대 전반기 비합법적인 사회주의사상단체들의 활동 내용을 보자. 먼저 사회주의사상을 연구하며 이를 광범한 노동자·농민 및 지식인들과 결합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는 당시 그들이 내세운 목적과 구체적 활동에서 볼 수 있다. 사상단체들은 그 목적으로 ‘역사적으로 필연성을 가진 신사회를 건설하는 데 요소가 되는 유물사관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 연구’, ‘무산계급 해방에 필요한 지식의 흡수’, ‘무산자 교양에 충실히 노력하여 계급의식을 각성케 할 일’, ‘무산계급해방에 필요한 지식과 전투적 훈련의 촉진’, ‘계급의식을 고취하여 그 해방운동을 촉함’ 등을 내세웠다. 사상단체들의 구체적 활동은 ‘토론회’·‘강연회’·‘좌담회’·‘독서회’·‘강습회’·‘야학회’·‘민중강좌’·‘프로문고’ 등으로 나타났다. 사상단체들은 10월 혁명 기념일, 5·1절, 파리콤뮨 기념일 등 각종 혁명적 기념일에 강연회 및 토론회 등을 조직하고 자기 성원들과 노동자·농민들의 계급의식 제고에 힘썼다. 이러한 강연회·토론회들에서 여러 가지 이론적·실천적 문제들이 취급되었다. 예컨대 ‘자본주의의 사적 발전과 그의 필연적 붕괴’,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레닌주의’, ‘무산계급정권 탈취와 혁명’, ‘계급투쟁의 원인’, ‘무산계급의 요구’, ‘노동자는 단결하라’ 등의 사회문제들이 취급되었다. 또한 사상단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들과 그의 해설서들을 번역·출판했다. 이렇게 하여 조선에서는 1920년대 전반기에 사상단체들에 의해 사회주의사상이 광범한 노동자·농민 및 지식인층 사이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주의사상의 보급은 조선사회의 특수성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혁명정세에 대응하는 계급투쟁의 옳은 전략전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이는 사상단체에 망라되어 있던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일련의 제한성, 즉 부르주아사상의 습성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에서 연유했다.

 다음 사회주의사상단체들은 각종 부르주아사상 특히 민족개량주의 사상조류를 반대하는 투쟁을 했다. 1920년대 초에 민족개량주의자들은 대중들을 사회주의사상으로부터 분리해서 혁명적 의식과 반일사상을 빼앗으려고 획책했다. 민족개량주의자들은 조선사회에서는 노동문제가 그렇게 절박한 문제가 될 수 없다면서 소위 ‘노동문제 상조론’를 제창하여 조선에서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사상의 보급을 반대했다. 민족개량주의자들은 조선의 대중을 정치적 무권리와 경제적 파멸에서 구원하는 길은 유산자와 무산자의 양 계급이 서로 타협하고 ‘대동단결’하여 ‘조선사람 자체의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李光洙와 같은 자들은 ‘민족개조론’을 제창하고, 조선인민이 곤궁에 처하게 된 것은 ‘열악한 민족성’에 그 원인이 있으며 조선인민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일제에 순종하여 ‘민족개조’를 단행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민대중으로부터 민족적 자긍심과 반일의식을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민족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농민대중 속에 자기들의 영향을 침투시키려고 기도했다.

 따라서 민족개량주의자들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며 그들을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은 1920년대 조선의 사회주의사상단체들 앞에 제기된 중요한 투쟁과업의 하나가 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족개량주의자들의 ‘노동문제 상조론’에 대하여 조선에서도 자본주의적 제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계급적 대립이 명백해졌다는 것을 논증했다. 사상단체들은 조선인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낙후하게 된 것은 그들의 ‘열악한 민족성’ 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정복과 착취’, 즉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식민지 노예화와 지배계급의 가혹한 착취와 억압에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조선인민을 구원하는 길은 일제를 물리치고 현 사회제도를 혁명적으로 개조하는 데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389)≪신생활≫7(1922). 이러한 각종 부르주아사상을 반대하는 사상단체들의 투쟁으로 당시 노동자·농민대중의 계급의식은 점차 높아져 갔다.

 끝으로 사회주의사상단체들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 대중운동을 발전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노동자·농민 등에게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먼저 노동자·농민단체의 조직을 촉성시키는 한편 그들의 투쟁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시 사상단체들의 활동에서 ‘소작인조합과 노동조합을 일으킬 일’, ‘노동회 조직의 촉성을 기함’, ‘소작운동 및 노동운동에 대하여 그 근본정신을 민중에게 이해케 하여 적극적으로 응원할 일’ 등이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많은 경우 사상단체들의 활동과 영향하에서 노동자·농민단체들이 조직되었으며 그들의 투쟁은 사상단체 성원들에 의하여 지도되었다. 사상단체들은 또한 일제의 주구 또는 지주나 자본가들이 조작하여 낸 반동적 어용단체들의 정체를 폭로, 규탄하며 그들의 영향으로부터 대중들을 떼어내기 위한 투쟁도 벌였다.

 이상과 같은 1920년대 사상단체들의 활동 자체는 대중적인 노동운동·농민운동과의 강고한 연계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수공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분산적이었고, 계통적인 운동계획과 준비가 부족했으며 활동범위도 협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상단체들은 조선에서의 사회주의 보급과 노동운동·농민운동 등 대중운동 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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