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2. 노동운동
  • 4) 노동조합의 후생복지 사업 및 소비자운동

4) 노동조합의 후생복지 사업 및 소비자운동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후생복지 사업도 전개했다. 서울출판노동조합이나 양복기공조합·노동자동우회 등은 지정병원을 설치하거나 의료기관을 운영했다. 원산노련에서 직영했던 노동병원이 가장 발전된 형태였다. 노동조합은 소비조합이나 공제소비부를 조직·운영했다. 지정병원이나 노동병원의 운영은 상당한 대중적 기반과 운동역량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반면 소비조합이나 협동조합운동은 생활권 수호나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운동이었다.442) 김경일, 위의 책, 468쪽.

 노동조합의 활동에서 1920년대 전반기 서울철공조합이 주도한 전차요금 인하운동은 특기할 만하다. 당시 경성전기회사는 전차·전기·가스 등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면서 많은 폭리와 더불어 독점기업으로서의 횡포를 자행함으로써 여론의 지탄이 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대두했던 경성전기 府營化론이나 1922년과 1925년에 일어난 일련의 전차승무원 파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1924년 11월 철공조합에 의해 전차요금 인하문제가 제기되었다. 요구의 주요내용은 노동자들이 한 번 타는 데 5전씩 내던 전차요금을 왕복에 5전씩 내자는 것이었다. 같은 해 11월 27일 철공조합은 회의를 열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각 노동조합 및 노동자 대표에 의한 직공대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했다. 이 운동은 독점기업 ‘경전’에 대한 정면투쟁이라는 점과 조선에서 최초로 전개된 일종의 소비자운동이었기 때문에 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철공조합은 12월 6일 위원회를 열어 우선 다른 나라의 전례를 참고하기 위해 상해·대련·동경·대판·평양·부산 등지의 각 노동단체에 조회문을 발송했으며, 전차요금 감하와 함께 전차안의 난로 설치도 요구했다. 철공조합의 감하운동에 고무직공조합과 인쇄직공조합 두 단체와 개인적으로 500여 명이나 참가했다. 이처럼 운동이 사회문제로 확대되자 경찰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1925년 1월 18일 ‘부내 여러 군데의 공장대표 20여 명’이 모여 ‘직공전차임금감하운동기성회’를 개최하고 각 공장에 출근하는 직공의 전차임금을 5할 할인할 것과 전차 실내에 난로를 설치할 것을 결의사항으로 채택했고, 경전에 교섭하기 위한 교섭위원 4명을 선거하여 교섭에 들어갔다.

 철공조합이 이 운동을 전개한 것은 저임금구조하의 과중한 교통비 부담이라는 일반노동자들의 일상적 요구에 착안하여 서울시내 전체노동자들의 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독점기업의 폭리와 횡포에 대한 일반여론이 이를 전 사회문제로 확산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443) 김경일, 위의 책, 469∼4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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