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3. 여성운동
  • 5) 근우회의 조직과 활동
  • (2) 근우회의 창립과 이념

가. 근우회의 창립

 민족유일당운동으로서 여성운동계의 통합·단일화의 촉진으로 1927년 5월 27일 근우회가 창립되었다. 근우회의 창립은 한국 근대여성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근우회 발기총회는 1927년 4월 26일에 다음 40인의 발기인단을 중심으로 열렸다.

강아그니아·차미리사·김선·김순영·김영순·김활란·김은도·김일엽·김순복·길정희·정칠성·조원숙·梁邁倫·유영준·이현경·李德耀·이경식·박원희·박흥순·박신우·방신영·徐弼善·손정규·신앨버트·신숙경·유각경·異恩惠·金智子·정종명·鄭子英·鄭昭君·車士百·최은희·최활란·현덕신·홍애시덕·황신덕·李孝德·林順分·주세행·진숙봉(≪東亞日報≫, 1927년 4월 27일,<근우회발기총회>).

 이들은 사회 각계 각층에서 활약하는 지도적인 지식여성이었다. 발기인의 직업은 의사·교원·종교인·기자·문학인·실업인 등이었다. 여성운동의 계파면에서 인적 상황을 살펴보면 기독교를 기반으로 보수적인 여성교육계몽운동을 펴온 민족주의 여성운동계(右派)와 사회주의사상에 입각하여 급진적인 계급투쟁으로서의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여성운동계(左派)로 나누어진다. 즉 좌우연합으로 출발된 것이다.

 1927년 5월 27일 YMCA 강당에서 회원 150명, 방청인 1,000여 명의 참석 아래 유각경의 사회로 근우회의 성대한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579)≪朝鮮日報≫, 1927년 5월 29일,<槿友會의 創立>. 총회의 진행은 준비위원회에서 미리 준비한 회순에 따라 진행되었다. 창립총회에서 21명의 집행위원을 선출하였으며, 이들은 5월 29일 제1회 신임집행위원회를 열고 임시의장에 김선, 임시서기에 박경식을 선정하여 다음의 8개항을 결의하고 6월 17일 발회식 거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였다.

제1항 부서 결정 및 부 역원 배치

  ① 서무부:조원숙·차사백·박경식

  ② 재무부:김선·최은희·방신영·우봉운

  ③ 선전조직부:박신우·유각경·정칠성·정종명

  ④ 교양부:황신덕·김동준·김영순·박원희

  ⑤ 조사부:김활란·김현경·홍애시덕

  ⑥ 정치연구부:유영준·이덕요·현덕신

 제2항 상무위원선거

  ① 서무부:박경식·조원숙

  ② 재무부:김선

  ③ 선전조직부:박신우

  ④ 교양부:황신덕

  ⑤ 조사부:김활란

  ⑥ 정치연구부:이현경

 제3항 지회 설치

  ① 지부규약 기초위원으로 황신덕·김활란·이현경 3인을 선정.

 제4항 각부사업:각 부에서 1년간 집행할 사업 구체안을 작성하여 다음 집행위원회에서 통과케 할 것.

 제5항 집행위원회 정기집회:매월 1·15일을 정기집회일로 함.

 제6항 회관:회관은 당분간 무료로 사용할 곳을 얻고, 교섭위원으로 유각경·방신영·최은희를 선정.

 제7항 발회식

  ① 발회식 강연회의 개최.

  ② 근우회가 지어서 당일 고창하며 회가 작성위원은 김동준·이현경·김활란.

  ③ 발회식은 6월 17일.

  ④ 발회식 준비위원 10인(각부 상무위원과 현덕신·정종명·최은희)을 선정.

 제8항 평양 출장

  ① 평양여자청년동맹 주최 강연회에 정칠성·정종명·박신우를 연사로 파견.

  ② 이 기회에 지회 설치에 노력할 것.

    (≪朝鮮日報≫·≪東亞日報≫, 1927년 5월 31일,<槿友會 發會式>).

 위의 8개항은 앞으로의 근우회운동을 어떻게 실행해 갈 것인가의 청사진과 같은 것이다. 근우회는 1927년 6월 17일에 발회식을 가짐으로써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적 거보를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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