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4. 형평운동
  • 5) 형평사의 활동
  • (3) 형평사원의 교육과 계몽활동

(3) 형평사원의 교육과 계몽활동

 형평사원들의 교육과 계몽은 창립초기부터 형평사의 핵심 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교육활동은 형평사의 중점적인 활동이었다. 그것은 형평사의 창립배경이 교육의 차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기인된다고 하겠다.

 각 지분사는 모두 교육부를 두어 아동의 교육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일반 학교에의 입학운동과 함께 야학·강습소·기숙사 등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지분사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사원들이 교사나 경영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습소나 야학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내용은 대개 보통 한국어(쓰기와 읽기)·산수·일본어·상식과 같이 생활에서 필요한 것이었고, 이와 함께 사원들의 의식을 각성하는 역할도 강조되었다. 이외에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교육에 관한 건>이 각 지분사 모임에서 결의되고 있었다.

 계몽활동은 사원들이 다른 사회구성원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동등한 사회적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이것은 일제통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족역량의 함양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민족주의 운동의 전략과도 부합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적 조류의 한 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원에 대한 계몽운동 내용 가운데 흔하게 발견되는 것은 ‘사원의 교양은 계급의식과 사회적 상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고 그 방법은 강좌·강연, 연설회·강습회의 개최였다. 공식적인 교육이나 출판 등의 제도를 통하여 형평운동의 이념이나 사상을 선전·전파하는 데 본질적 한계가 있었던 상황에서 강연회나 강좌·토론회 등은 사원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며 사회적 의식을 자각시키는 유용한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연설회의 주제는 사원들의 의식 각성을 촉구하고, 형평사를 선전하고 형평사를 통해 형평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결집을 이루려는 목적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611) 1928년 7월부터 8월까지 본부의 지방순회 夏期 講演隊가 조직되어 전국적으로 강연회를 열었던 것 같다. 安城형평사와 형평전주지부에서 행한 강연회의 제목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一. 형평운동의 의의와 그 사적 전개 : 李石岩
一. 인종차별의 기원부터 소멸까지 : 金基河
一. 형평지방지부의 임무 : 박평산
≪동아일보≫, 1928년 7월 27일·8월 3일.
혹은 그 지방의 특수문제를 대중의 방법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실시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교양문제, 즉<회원·대중교양의 건>은 거의 모든 지분사에서 논의되었는데, 이것 역시 강연·강좌 등과 유사한 문제들을 다룬 안건이었다.

 지분사의 계몽활동은 반봉건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기도 했다. 계몽운동의 대상이 된 것이 대부분 봉건질서 내에 존재하는 것이었고, 미신타파·조혼금지·금주문제도 계몽운동의 일종이었다.

 다음으로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이 機關誌 발행이었다. 최초의 형평사 기관지는 1924년 6월부터 발간된≪世光≫이었으나 곧 발금처분을 당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아마도 형평운동의 의의와 형평사 활동을 소개하고 사원들의 단결 및 일반사회의 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또 사원들의 지식 개발과 품격의 향상, 교양의 증대 등에도 중점이 놓여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관지 발행은 기관지를 통해 본부와 지분사가 서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정책결정에 대한 지분사 차원의,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결집할 수 있는 장치였다. 정보교환에 유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각 지분사에 대한 차별에 대해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방책이 될 수도 있었다.

 어렵게 발행되었던 기관지≪세광≫이 발금처분을 당하자, 이후 기관지 발행은 형평사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되어 많은 지분사에서 기관지 발행을 촉구하였다.

 1929년에서야 형평사 기관지로≪正進≫(나아가자)이 발행되었다.612)≪正進≫창간호의 내용은 ‘형평운동의 정신’, ‘형평운동의 의의와 역사적 고찰’ 등 형평운동 관련 논설뿐만 아니라 ‘흡연과 음주’, ‘가정강좌(주택)’ 등과 같은 일반상식이나 시·수필·소설 등도 있었다. 필자들은 이동환·박평산·길한동·서광훈·이선동·이준호 등 널리 알려진 형평운동가들과 함께 일반사원들도 참여하였다.≪정진≫에 대한 성원이 매우 컸다고 하는 것은 지방의 지분사가 정진사 지사를 설립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정진≫은≪衡旗≫로 改題하기로 하였으나 실제로 게재되어 발행된 것은 1933년에 들어서인 것 같다. 형평청년전위동맹 사건 때 압수된 증거품에 목차만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그를 통해≪형기≫의 내용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총본부에서 발행되는 기관지는 각 지분사에서 일정 부수를 의무적으로 할당받아 그 대금으로 발간비용에 충당했던 것 같다. 연맹체 수준에서도 기관지 발행이 논의된 기록이 있지만, 실제 간행여부는 불확실하다.

 또한 팜플렛 형식의 간행물이 발간되었던 것 같다. 이것은 정기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기관지로서의 월보·회보는 아니었다. 제작이 용이하고 경비가 들지 않는 팜플렛 형태를 통해 조직원의 교양과 의식화 작업의 일환으로 계획되어 발간되었던 것 같다.

 이외에도≪별≫·≪형평≫·≪형평뉴스≫·≪동지≫·≪赤友≫·≪농민≫등의 출판물들이 비밀로 출판되어 허가없이 반포되었다고 하나 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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