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4. 형평운동
  • 6) 형평사의 해소
  • (1) 사회주의운동계의 방향전환론

(1) 사회주의운동계의 방향전환론

 1926년 11월 15일 火曜會系 조선공산당의 합법적 사상단체인 正友會는 1925∼1926년간에 있었던 일제의 제1·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한국 사회주의 운동계가 전반적인 침체에 빠지자 이의 타개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회주의운동의 방향전환론을 내걸었다.613) 정우회선언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글 참조.
梶村秀樹,<朝鮮の社會運動と民族鬪爭>(≪岩波講座 世界歷史≫27, 1971), 249쪽.
姜萬吉,<民族解放運動의 發展-新幹會運動->1(≪韓國史硏究入門≫, 지식산업사, 1981), 501∼511쪽.
이균영,≪신간회연구≫(역사비평사, 1993), 64∼67쪽.
金明久,<코민테른의 對韓政策과 新幹會>(≪新幹會硏究≫, 동녁, 1983), 254∼261쪽.

① 분파투쟁의 청산과 사상단체의 통일. ② 대중의 무지와 自然成長性의 퇴치를 위한 조직 및 교육활동. ③ 종래의 경제투쟁의 형태로부터 보다 계급적·대중적·의식적인 정치투쟁 형태로의 전환. 이 과정에서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의 일시적인 공동전선이 필요.

 이미 1925년 이전부터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 사이에는 협동전선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한편으로 당시 대다수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가졌던 코민테른이 1920년 제2차 대회에서<민족테제>를 채택한 이후부터 제기한 식민지·종속국에서의 반제연합전선 전술론과 중국에서도 국공합작 논의가 크게 일어나고 있었던 데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족협동전선에 대한 요구는 1925년 6월 치안유지법의 실시에 의해 한층 강하게 되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시도가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1926년 7월 8일에는 “조선민족의 공동 이익을 위해 분투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朝鮮民興會가 발기되어, 전민족적인 각 계급의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실업·교육·노동·농민·언론·종교·여자·청년·형평·학생·사상 등 각종의 운동을 망라하여 동회의 조직이 결의되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조선일보≫·≪중외일보≫파(申錫雨·安在鴻·李晶燮·최선익) 및 천도교 구파의 權東鎭·李鍾麟, 불교도인 韓龍雲과 洪命熹·申采浩-은 사회주의자들과 일부 부르주아 민족운동가들을 다수 조직하여 1927년 2월 ‘민족단일당’·‘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신간회를 창립하였다.

 신간회가 창립되자 전국의 각 단체-청년·사상·노동·농민단체-등으로부터 신간회를 지지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5월에는 신간회의 자매단체로서 여성운동의 통일조직체인 槿友會가 창립되었으며, 청년운동에 있어서도 朝鮮靑年總同盟이 8월에 정치투쟁으로 방향전환을 선언하고 조직체를 道·郡을 기초로 하는 전국적 단일 중앙집권적 청년동맹 조직으로 변경하는 등 새로운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9월에는 朝鮮勞農總同盟이 방향전환을 선언하여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분립(朝鮮勞動總同盟과 朝鮮農民總同盟으로)시켜 정치투쟁에 적극 참가할 것을 밝힘으로써 정우회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이렇게 신간회 창립으로 상징되는 이 시기는 諸사회운동 단체가 그 투쟁방향을 크게 전환시키려고 하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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