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흔히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정책을 논할 때 정책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하나는 自主의 유형으로 직접적인 간섭보다는 식민지의 자주적 발전을 표방하는 정책이며, 또 다른 하나는 同化로 식민지 제도와 풍습을 본국과 일체화시키는 정책이다. 일제의 조선통치는 바로 동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을 식민지로 영유한 직후부터 일제는 줄곧 조선인의 완전한 일본인화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식민지 정책을 전개시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조선민족의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저항운동이었던 3·1운동 직후인 1919년 8월 19일 일본의 다이쇼(大正)천황이 조선인과 일본인을 ‘천황의 赤子’로서 전혀 차별하지 않고 一視同仁의 입장에서 통치하겠다는 요지의 조서를 발표하면서 이후 조선 통치의 기본입장으로 간주되어 왔다.043)御手洗辰雄,≪南次郞≫(1957), 419쪽. 그리고 이어 1920년 하라(原敬)수상이<朝鮮問題私見>을 통해 조선에서의 식민지 통치의 원칙으로 동화주의, 즉 ‘內地延長主義’를 내세우면서044)山本有造,<日本における植民地統治思想の展開(2)-「六三問題」·「日韓倂合」·
「文化政治」·「皇民化政策」->(≪アジア經濟≫32-2, 1991), 37쪽.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동화주의에 입각한 식민통치는 우가키 가즈시케(宇垣一成) 총독 시기 ‘內鮮融和’를 거쳐, 특히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화하는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內鮮一體’론이 대두하면서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모든 식민정책은 조선의 민족과 문화를 말살하는데 집중되고 있었다. 즉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만이 조선인들의 일제 식민정책에 대한 비판의식을 마비시켜 아무런 저항없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인적·물적으로 동원시키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내선일체’론은 1936년 8월 제7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에 의해 조선에서의 통치이념으로 내세워진 것이었다. 내선일체론에서는 조선인들이 완전한 일본인이 되어 진정한 皇國臣民이 되면, 더 나아가 ‘大東亞共榮圈’의 추진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대륙전진병참기지라는 조선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요구를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는 조선인들로 하여금 일본인과 같은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게 하여 저항 없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면 내선일체란 어떤 내용과 구조를 갖고 있는 이념인지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째로 내선일체는 ‘國體의 本義의 具現’으로 강조되고 있다. 즉 “萬世一系의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받들고 萬民輔翼의 臣節을 완수하는데 힘쓰는 사람 모두가 一視同仁의 皇恩을 입은 황민으로서 추호의 차이가 없다”045)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1쪽.는 것을 일본 국체의 본질적인 의의로 내세우며 조선인들로 하여금 진정한 황국신민이 되고 더 나아가 ‘대동아공영권’의 추진력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046)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2쪽.

두번째로는 내선일체란 ‘肇國의 정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는 先住者와 外來者를 불문하고 모두 무차별의 日本臣民으로 만드는 “부단한 皇國臣民 創成의 역사”047)위와 같음.라고 단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선일체는 필연이고 또 유일한 목표이며, 장래의 목표일 뿐 아니라 과거의 역사가 실증하는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역사 속의 사실로 증명하기 위한 작업이 역사연구의 미명 아래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048)津田剛,<內鮮一體論の基本理念>(≪今日の朝鮮問題講座≫1, 1939), 11∼23쪽.

내선일체론의 세번째 이념은 세계 대세의 하나로 주장되고 있다. 독일·이탈리아와 더불어 三國同盟을 결성하고 있는 일본이 담당한 임무는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에 있는데, 그 근본정신은 어디까지나 동양 古來의 사회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049)이와 관련하여 한가지 주목할만한 주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이 청일전쟁에 승리한 결과 대만을 식민지로 영유하고 또 동시에 청국이 최후의 屬邦인 조선에 대한 宗屬관계를 소멸당한 이후 동아시아 세계제국의 붕괴과정은 동시에 근대 제국주의에 의한 동아시아 세계제국의 최종적 분할과정과 중복된다는 점이다. 이 때 같은 동아시아 문명권에 속하면서 제국의 外周部에 있었고 자기를 小‘中華’제국으로 비교해 왔던 일본이 바로 근대 제국주의의 상속인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근대 제국주의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존재방식을 규정하는 특질로서 기능하는 것이 된다는 주장이다. 즉 구제국의 宗屬관계의 繼承帝國 日本의 식민지 지배정책의 특징, 즉 皇民化 정책의 原由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일제가 내선일체의 이념을 동양 고유의 정신·사회사상에서 찾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大江志乃夫,<東アジア新旧帝國の交替>,≪近代日本と植民地≫1, 1992, 11∼14쪽). 즉 “작게는 家, 크게는 國으로 나아가는 바로 국가 본위의 정신이며, 그 가운데서도 일본은 一大家族國家로서 天皇과 臣民과의 관계에서 義는 君臣간의, 情은 父子간의 기본으로 이것을 겸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라고 하였다.050)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4쪽.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의 기본이념은 萬邦이 각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국제 공존공영의 사상에 있으므로 “안으로는 내선일체의 결실을 맺고, 밖으로 일본을 盟主로 하는 동양인의 동양을 건설하는 것이 세계평화 확립의 大據點을 건설하는”051)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4∼5쪽. 것이 된다는 것이다.

네번째로는 내선일체는 필연이므로 이 필연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052)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5쪽. 조선인과 일본인의 사이에는 계통상 및 문화상 고도의 近似性이 있어서 一體化의 여러 조건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걸쳐 내선일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실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내선일체가 필연적인 사실임을 조선인들로 하여금 믿도록 강요하는 한편에서 내선일체라는 이념, 그 자체로부터 교묘히 빠져나가 그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이 가운데에서 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선일체라고 하면 곧바로 권리·의무의 완전한 同一化를 想起 要望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내선일체의 근본 전제는 皇國臣民化에 있으며 私心을 버리고 公을 받들며 진정으로 폐하의 民이라는 자각에 철저한 것이 모든 제도상의 일체화의 先決問題이다. 이 근본 전제를 躬行 실천하지 않고 도리어 제도상의 평등을 구하여 그것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궁극의 이념을 비방하는 것과 같은 것은 정말로 非皇國臣民的인 태도로서 … (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6쪽).

이와 같이 바로 일제가 표방하는 내선일체의 내용은 황국신민화라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一體化이며, 각종 차별제도도 “특수한 이유에 근거한 것으로서 황민화의 진도에 따라 점차 改變해야 하는 것이지만 현단계에서는 아직 존재의 이유를 잃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053)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實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8).
구체적인 작성연도는 미상이나<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시킨 것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일제측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황국신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얼마든지 유예될 수 있는 一體化, 즉 차별의 합리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필연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내선일체란 사실상 언제까지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제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더구나 1930년대 중반 이후 조선 내의 민족해방운동이 그 명맥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차별로부터의 탈출’054)宮田節子,<「內鮮一體」の構造>(≪朝鮮民衆と「皇民化」政策≫, 1985), 148∼192쪽. 논리로 내선일체론을 추종하던 많은 친일적인 조선인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은 바로 일제에 의해 교묘하게 포장된 차별을 내선일체라는 이름 아래 다시 조선인들에게 유포시키고 있었다.

내선일체론의 이념으로서 끝으로 들고 있는 것이 內鮮文化의 綜合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 그대로의 종합이 아니라 일본 문화의 일방적인 移植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半島文化政策의 근본은 일본 문화의 半島에의 移植 培養에 있으며, 일본국민 도덕의 반도에의 浸潤 透徹을 꾀하여 忠君愛國의 숭고한 義理·人情의 機微에 도달하기까지 조선 민중으로 하여금 올바르게 理解 咀嚼시켜 그 성격을 도야시키고 그 情操를 순화함과 동시에 과학·언어·문예·취미·오락 기타 생활 양식의 전반에 걸쳐 일본 문화의 秀美한 것들을 半島에 育生 繁茂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 (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7쪽).

즉 일본의 문화를 그대로 조선에 옮겨 놓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종합의 궁극적인 의미이며 단지 조선의 문화는 대륙적인 정조를 지니고 있으므로 섬세 미묘한 섬나라 일본의 문화를 보완하는 데에 필요하다는 인식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055)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7쪽.

이상과 같은 내용과 구조를 갖고 있는 내선일체론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윤색되면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즉 조선인과 일본인, 더 나아가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논리는 조선인들의 일제 지배정책에 대한 반발과 반항을 희석시키기 위한 목적에 이용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중일전쟁 이후 일제 말기에 전개되고 있는 모든 일제의 정책의 근본이념으로서 조선인들을 물심양면에서 철저한 일본인으로 만드는데 이용되고 있었으며, “내선일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신념”056)朝鮮總督府,<極秘 內鮮一體ノ理念及其ノ具現方策要綱>(≪大野文書≫1260, 1941), 10쪽.이라고까지 절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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