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3) 교육정책

3) 교육정책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가장 먼저 조선인, 특히 자라나는 조선의 청소년들에 대한 일본인화 교육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1911년 8월 제1차<조선교육령>을 공포한 이후 제4차<조선교육령>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교육령의 내용 또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기본방향은 교육을 통한 조선민족의 말살에 있었고, 제1차<조선교육령>의 ‘忠良한 제국신민의 육성’이라는 기본목표가 이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이후 1922년 2월 공포한 제2차<조선교육령>에서는 앞서 언급한대로 일제의 지배정책이 ‘내지연장주의’를 표방함에 따라 식민지 교육에 있어서도 이러한 노선을 충실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즉 학교 종류 및 수업 연한에 있어 일본과 동일한 학제를 택하고, 內鮮共學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일본어를 常用하는 사람과 상용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여 학교 교육을 행함으로써 일제가 주장하는 동화주의가 철저한 차별주의에 입각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제의 교육정책의 성격을 변화시킨 또 한번의 계기를 만든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내선일체론의 등장이었고, 조선 민족에 대한 말살책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미나미 총독의 핵심 브레인으로서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하였던 시오하라(鹽原時三郞) 학무국장이 내세운 교육의<3대 강령>(國體明徵·內鮮一體·忍苦鍛鍊)에063)정재철,≪日帝의 對韓國 植民地 敎育政策史≫(1985), 401쪽. 입각한 1938년의 제3차<조선교육령>은 시오하라가 만들어 낸 말 그대로064)宮田節子,<皇民化政策の構造>(≪朝鮮史硏究會論文集≫29, 1991), 42∼43쪽. ‘皇國臣民’의 완성을 위한 교육의 기본 방침이었다. 즉 이전 시기의 ‘충량한 제국신민’이 ‘황국신민’이라는 용어로 표현됨으로써 새로운 유형의 식민지 교육이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3차<조선교육령>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그 내용 자체가 육군특별지원병제도의 창설을 앞 둔 군부의 교육시설 개선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교육령>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조선인들을 병력자원화하는 기초작업에 있었다는 것이다.065)<國民敎育ニ關スル方策(1937년 6월)>(≪舊陸海軍文書(別冊 三)≫No. 678). 제3차<조선교육령>에서는 보통학교는 소학교로 고등보통학교는 중학교로, 여자고등보통학교는 고등여학교로 학교 명칭을 고쳐 조선인을 위한 학교와 일본인을 위한 학교의 명칭을 동일하게 하였다. 그리고 교과목·교과과정·교수과목 등은 조선어 이외의 것은 일본과 동일하게 하였는데, 조선어 교과를 종래 필수과목으로부터 선택과목으로 전락시키는 동시에 수업시수를 감축시켰다. 이에 따라 공립학교에서는 대부분 조선어를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 즉 제3차<조선교육령>의 내용은 표면적으로는 조선의 교육제도를 일본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조선의 교육을 일제가 철저하게 장악하고 더 나아가 ‘황국신민’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조선인들의 의식·언어·역사 등을 완전히 말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는 1941년 3월<교육령>의 일부를 개정하여<국민학교규정>을 공포하고 종래 소학교라는 명칭을 일본과 마찬가지로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의미하는 것은 “동아 및 세계에서의 일본의 역사적 사명을 감안하여 국민의 기초적 鍊成을 완수할 수 있는 교육체제를 확립”한다는 것으로, 바로 일제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민을 양성해 내는 교육이 그 목표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민학교의 교과과정에서 종래 선택과목으로나마 존속하고 있었던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시켜 조선어의 완전한 말살이라는 목적을 함께 관철하려 하였다. 이어 1942년에는 1946년부터 조선에서 의무교육제도를 시행할 것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1944년부터 조선에서 실시하기로 결정된 징병제의 기반조성을 위한 것이었다. 즉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이제 조선에서의 교육의 목표를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없애고 이른바 ‘황국신민’으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침략전쟁에 조선의 학생들을 총동원하여 군사체제화하는 것에 두게 된 것이다.

1943년 3월 공포된 제4차<조선교육령>의 내용이 이러한 일제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교육의 전시체제화를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함께 기능함으로써 정상적인 학교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교육은 조선에서 징병제가 실시되는 상황을 반영하여 학교가 군대의 보조기관으로 전락하였고, 이에 따라 전체주의적·군사주의적·국가주의적 교육이 강제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전쟁수행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던 극심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급 학교를 노동력 공급원으로 동원함으로써 학생들의 생활전체가 전쟁협력에 강제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제4차<조선교육령>에서는 이제까지 형식상 선택과목으로나마 존속하고 있었던 조선어 교과를 앞서의 초등학교에 이어 중등학교 및 사범학교의 교과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렸다. 이에 반해 일본어·일본도덕·일본지리 등의 교과는 國民科라고 하는 종합적인 교과로 통일시켜 종전보다 더욱 중시하였다.

이어 전쟁 막바지인 1945년 5월에는<전시교육령>을 공포하여 모든 학생들의 決戰態勢 확립을 외치면서 교직원과 학생들로 하여금 ‘學徒隊’를 결성하도록 하여 학생들을 곧바로 군대조직화함으로써 이제 교육은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즉 민족말살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었던 일제의 조선에 대한 교육정책은 일제 말기의 징병제·학도대 등으로 이어지면서 조선 청소년들을 전쟁에 몰아넣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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