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의 결과 조선의 농촌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중에서 농민들의 현실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라 하면 농민층의 경제생활이 매우 악화되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농민층이 일제와 지주를 상대로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1930년대 농민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경제상태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미 대공황기에 조선의 농촌과 농민의 상태는 이전 시기에 비하여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즉 1930년 현재 춘궁 상태에 있는 농가호수는 자작농 18%, 자작 겸 소작농 38%, 소작농 68%248)朝鮮總督府,≪朝鮮ノ小作慣行≫(下) 續編, 120∼121쪽.로서 당시 농민층은 이미 기아상태에 처해 있었다. 이를 다음의<표 1>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 별 농가총소득 가 계 비 부 족 액
자 작 679.819 701.689 21.870
자 소 작 392.987 473.077 80.090
소 작 297.999 327.607 29.608
평 균 456.935 500.790 43.855

<표 1>조선농회 조사 농가 수지 상황(1932) (단위:원)

*≪동아일보≫, 1932년 11월 27일;김현숙,<일제하 민간협동조합운동에 관한 연구>(≪일제하의 사회운동≫, 문학과 지성사, 1987), 203쪽에서 재인용.

위의<표 1>에서 보면 자작·자작겸 소작·소작을 불문하고 모든 농가는 적자를 내고 있다. 이는 모든 농민층이 확대재생산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몰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다음의<표 2>에서 확인하듯이 농민층은 하강분해하고 있는 것이다.

연 도 지 주 자 작 자작겸소작 소 작
1926 3.8 19.1 32.5 43.3
1928 3.7 18.3 32.0 44.9
1930 3.6 17.6 31.0 46.5
1931 3.6 17.0 29.6 47.4
1932 3.6 16.3 25.3 52.8
1933 17.1 24.7 51.9
1934 17.0 24.0 51.9

<표 2>농민층의 분해상황

*조선농회,≪조선농업발달사≫, 발달편, 부록 제3표에서 작성.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당시의 한 신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비례로 보면 조선인은 매년 지주는 자작으로 화하고 자작은 자작겸 소작으로 화하고 자작겸 소작은 순소작으로 화하는 반면에 일본인은 매년 소작은 자작으로 화하고 자작은 지주로 화하여 매년 농가호수가 증가하는 까닭에 조선인의 생활상태는 나날이 퇴보하여 살 수 없어 男負女戴로 정든 고향을 등지고 북만주로 향하게 되었다(≪동아일보≫, 1928년 8월 1일).

또한 농산물 가격은 농업공황의 여파로 폭락하였다. 이를 다음의<표 3>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26년 1931년
멥쌀(1석) 31.59 14.74
콩(1석) 16.95 9.47
고치(10관) 84.23 18.37

<표 3>주요 농산물의 가격표

*朝鮮農會,≪朝鮮農業發達史≫ 發達編(1944), 부록.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농민은 각종의 부업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일제는 이미 공동판매, 미가조절 등의 독점가격정책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농민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에 따라 농민층은 급격하게 빈농층 및 농업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농촌 사회의 경제적 모순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상과 같은 농민층의 분해현상은 전래의 농촌 사회에서의 관습이 붕괴되는 계기가 된다. 즉 전래의 농촌 사회는 지주와 씨족 집단을 비롯한 공동체적인 조직이 지배적이었음에 비하여 이제는 일제와 친일화한 지주층에 대한 농민층의 대결구도가 한층 명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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