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4. 청년운동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1920년대 청년운동이 활성화되자, 일제는 이 청년운동이 항일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가졌다고 판단하여 청년단체의 집회를 금지하였으며 청년단체의 활동을 엄중히 감시, 탄압하여 청년운동을 공산주의운동과 동일시하고 지도자를 체포, 투옥하기를 일삼았다. 또한 대륙침략전쟁을 목전에 둔 일제는 우리의 청년운동을 저지하고 대륙침략의 인적자원 확보를 도모하여 1929년 10월<청년훈련소 규정>을 제정하여 각 부·군·읍·면에 청년훈련소를 설립케 하였다.

이 청년훈련소는 ‘청년의 심신단련’·‘국민으로서의 자질향상’의 목적하에 설립되었는데, 16세 이상의 남자를 입소케 하여 4년간 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훈련소의 교육과목은 수신 및 공민과·교련·보통과·직업과로 나누어 수신 및 공민과는 100시간, 교련은 400시간, 보통과는 200시간, 직업과는 100시간으로 하였다. 그리고 교련은 각개교련, 부대교련, 진중교련, 기신호, 거리측정, 군사강화 등으로 군대훈련소와 같은 군사교육을 받도록 하였으며, 1930년대에 전국 각 리에 청년훈련소가 설치되어 수많은 청년들을 교육받도록 하였다.379)≪朝鮮總督府官報≫, 1929년 10월 1일.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의 청소년을 침략전쟁의 인적자원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며 일제가 대륙침략전쟁을 일으키기 1년 이전에 이미 그 준비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에 급격히 성장한 우리 민족의 청년운동을 근본적으로 좌절시키려 하였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1933년부터 농촌진흥운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일제는 권력기구를 총동원하여 농촌조직을 본격적으로 개편하였다. 즉 일제는 우리 민족의 실력양성운동으로 전개되었던 청년·여성·소년운동 등 모든 사회경제적 민족운동을 종식시키고, 한국을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고, 또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각 부락단위로 농촌진흥회 식산계·청년단·부인회를 결성하고 종래 우리 민족의 조직을 일제의 관변조직으로 바꾸어 나갔으며 우리 민족의 자생적 조직을 음양으로 탄압하여 그 활동을 저지하였다.380)신재홍,≪항일독립운동연구≫(신서원, 1999), 318∼319쪽. 일제는 이와 같은 관변조직의 목적을 근검저축·소비절약·생활개선·금주·단연 등 종래 우리 민족의 실력양성운동과 같은 목적을 내세워 우리 민족을 현혹시켰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을 기만하는 것이었다. 일제의 조직목적이 대륙침략전쟁에 한반도를 유용한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한 것에 있는 반면, 우리 민족의 목적은 민족경제자립을 기하여 일제로부터 주권을 쟁취하고자하는 항일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 그 목표하는 바가 정반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 중반 우리 민족의 실력양성운동은 침체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중일전쟁이 개전된 이후 일제는 소위<국가총동원령>을 제정·공포하여 전시체제로 바꾸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탄압을 가중시켜 나갔다. 1938년<국민정신총동원령>을 제정하여 농촌진흥운동에서 결성되었던 각종 사회조직을 총동원운동의 말단 기구로 흡수하여 통제함으로써 우리의 민족운동은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청년조직에 대해서도 일제는 중일전쟁 개전 이후 청년단체를 총독부가 직접 관리하기 위하여 각 도·부·군 단위로 연합청년단을 조직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일제의 행정관리로 하여금 직접 통제, 관리하도록 하여 청년단체를 일제의 침략전쟁도구로 만들었다.

1938년 1월 총독부가 전국에 설치한 청년단은 4,000여 단체로 확대되었으며 단원은 15만 명에 달하였다.381)≪동아일보≫, 1938년 1월 12일. 그리고 청년단의 관리를 더욱 조직적으로 엄격히 하기 위하여 각 지방의 청년단 관리를 담당한 직원과 학교직원을 소집하여 지도자 강습회를 개최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 20사단과 협동하여 도별로 청년훈련 지도자 강습회를 개최하여 효율적인 청년단 통제를 기하였다. 이 강습회의 일정을 보면 평남·평북은 3월 11일부터 16일까지 77연대와, 황해·경기도는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78연대와, 충남·충북과 전북은 3월 14일부터 19일까지 79연대와, 경남·경북과 전남은 3월 9일부터 14일까지 80연대와 협동하여 강습회를 개최키로 하였다.382)≪동아일보≫, 1938년 1월 17·18일.

뿐만 아니라 총독부는 종래의 실습학교와 청년훈련소를 통합하여 청년학교를 전국에 17,000여 교를 설립케 하고 생도 230만 명을 수용하도록 하였으며 청년학교 입학을 의무제로 만듬으로써 우리 민족의 청년층을 침략전쟁에 이용할 인적자원으로 확보시켜 나갔다.383)≪동아일보≫, 1938년 1월 21일.

1930년대 청년운동은 이상과 같이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이 발발한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일로에 빠져 그 활동이 1920년대에 비하여 크게 빈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청년단체의 수도 급감하고 기존의 단체들이 강제해소 또는 자연 해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30년에서 1934년까지 조선청년총동맹의 지방조직인 지방청년동맹을 제외하고 이 시기에 조직된 청년단체는 다음과 같다.384)≪동아일보≫, 1930∼1934년.

 단체명  설립장소 설립년월일  목적사업
중강진청년협회 평북 중간진 1930. 3. 20 농촌진흥·문맹퇴치
노동청년회 평북 강동 6. 10  
한강엡웟청년회 경기 고양 한지 7. 1  
승호청년회 평남 평양 8. 1  
입석청년회 평남 안주 28  
방현청년회 평북 구성 10. 27  
아산조기단 충남 아산 11. 1 체력증진·저축장려·토산품애용
청송청년회 평북 안주 19 도박금지
지덕청년회 평남 맹산 12. 04 도로청결·근검저축
一八청년회 평북 연변 연산 1931. 1. 1 문맹퇴치·풍속개량
서종청년수양단 황해 봉산 3. 23  
영종청년회 경기 개풍 흥교 4. 4  
청년면려회 황해 곡산 5. 25  
노동청년회 평남 강동 지리 6. 10 농촌진흥·문맹퇴치
별하청년수양회 평북 강계 별하    7.  
지덕청년회 평북 맹산    8.  
서산청년단 평북 귀성 10. 5  
창주청년단 평북 구성    11.  
보성청년회 평북 강동 1932. 1. 야학운영
신촌청년회 경기 포천 2. 12 금주·단연
인제청년회 강원 인제 2. 금주·단연
삼가근로청년회 경남 합천 23  
청년문우회 경남 동래 7. 29  
성북청년단 경기 포천 군내 9. 10 생활안정·공동경작·조기작업·야학운영
기독교청년면려회 전남 강진 17  
일신회 충북 보은 속리 10. 1 생활개선·근검저축·상부상조
신광청년회 경북 영일    10.  
경성청년회 서울 11. 4  
고려청년회 경기 개성 24 공동경작·야학운영
풍덕청년단 강원 양양 대포 1933. 2. 1 농업강습
가평청년단 경기 가평 8. 8 농업진흥
암면청년회 경기 시흥 암면 9. 6  
무극청년단 충북 음성 금왕 12. 1  
중앙청년단 충북 충주 9 체력단련·생활개선·사회봉사
이천청년단 경기 이천 13  
학봉청년단 강원 이천 학봉  
서평양청년회 평남 평양 23 반민구제
청년흥풍회 황해 평산 1934. 1. 24 지식발전
농촌생활개선회 경남 진해 대저 26 색의장려·금연·인조견사용억제·소비절약
협동청년회 평북 강동 송석    2.  
선명청년단 평북 운산    3.  
서호청년회 황해 재령 서호 5. 10 지식함양·체육장려·농촌진흥
함흥기독교청년회 함남 흥남   금주·단연
사평청년회 황해 신천 5. 8 금주·단연
불교청년동맹 경남 진주 15 야학운영

<申載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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