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1930∼1940년대에 임시정부는 주변의 여러 정당조직에 의해 유지되거나 견제되는 현상을 보였다. 더러는 임시정부를 사수해 나가는 정당이었고, 또 더러는 임시정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있었다.

1920년대 후반의 유일당운동을 계승한 정당조직들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성향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하나는 이당치국의 개념을 도입하여 정당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독립운동도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독립운동정당’이라 일컫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민족단일대당으로 조직된다면 임시정부는 대권을 그 기관에 넘긴다고 약헌에 못박기까지 하였다. 또 하나는 민족협동전선·민족통일운동·민족통일전선운동·좌우합작 등으로 불리는 통일운동이었다.

1930∼1940년대의 정당들을 정리하면, 몇 단계로 나뉜다. 1930년 한국독립당 결성을 전후하여 의열단도 정당으로 변신하였고, 신한독립당·조선혁명당이 자리잡았다. 유일당운동이 깨지면서 중단된 통일운동은 다시 1932년 이후 추진되다가, 1935년 민족혁명당이 결성됨으로써 일단 결실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것은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유지세력이 불참한, 불완전한 것이었다. 게다가 바로 이탈세력이 생겨 통일운동은 일단 허물어졌다. 그 결과 김구 중심의 한국국민당과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이라는 양대 정당시기를 맞았다

양대 정당은 1937년 중일전쟁을 맞으면서 강력한 연합체를 만들어 갔다. 광복진선과 민족전선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두 거대 연합체는 다시 통합노력에 들어갔고, 1939년에 7당·5당 통일회의를 거치면서 일순간 진선협회를 구성하기도 했지만, 일단 완전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렇게 되자, 우파만의 통합체인 (중경)한국독립당이 1940년에 결성되어 임시정부의 여당이 되었다. 당(한국독립당)·정(임시정부)·군(한국광복군)의 완성된 체제를 갖춘 것이다. 민족혁명당과 양대 정당체제가 다시 형성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상황이 급박해지고 중국 국민당정부가 통합을 요구함에 따라 그 동안 임시정부를 부인하던 민족혁명당이 1942년에 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주변 군소정당은 이 보다 앞서 임시정부에 합류함으로써 1942년 이후 임시정부는 중국관내 독립운동세력이 명실상부하게 집결한 구심체가 되었다.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벌인 독립운동정당은 우선 단체 성격 자체에서 발전적인 성향을 보였다. 여러 성격의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존재하다가 1930년 이후에는 정당조직이 대표성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정당은 임시정부의 철저한 유지세력과 반대세력으로 구성되었는데, 의견의 차이를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통일운동이 전개되었다. 1942년부터 모든 정당들이 임시정부에 합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1920년대 후반 이후 전개된 정당결성과 통일운동의 역사적 경험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처럼 통합된 모습으로 광복을 맞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겠다.

<金喜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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