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Ⅰ. 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민중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한 민중교육운동의 주체는 첫째 각 종교단체, 둘째로 청년단체, 셋째로 형평운동단체, 넷째 농민운동단체, 다섯째 노동운동단체, 여섯째 여성운동단체, 일곱째 부락공동이나 지방유지, 여덟째는 민중계몽교육에 뜻을 가진 개인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는 한말 개화기부터 수많은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근대교육발전에 기여하였거니와 일제하에서도 정규사립학교 뿐 아니라 야학이나 개량서당을 설립하여 문맹퇴치와 민중계몽에 앞장섰던 것이다.

 교회는 자신의 조직력과 인적자원·물적자원을 동원하기에 유리했고 교회당이나 부속건물을 활용할 수 있어 민중교육기관의 운영이 용이하였다.

 천주교도 야학이나 개량서당을 설립하여 문맹퇴치와 민중계몽교육에 힘썼다. 평양의 교구장 홍용호 신부(1943년 평양교구장에 취임하여 1944년 주교가 됨)는 일제하 천주교의 문맹퇴치운동의 성과와 그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가장 한심한 것은 읽을 능력이 있으되 읽기를 게을리하는 것과 또한 읽을 능력이 없는 문맹들이 너무나 많이 있는 것이다. 문맹들은 참으로 가련한 자이다. 가톨릭에게 동정심이 있다면 먼저 저들을 향하여 동정하여야 할 것이오. 우리에게 구제사상이 있다면 먼저 저들을 구제해야 할 것이다. 아! 모르는 이들이여. 배워라. 가톨릭 식자들이여. 가르치라! 이것은 그대들의 가장 신성한 사도직이다. 각 교회와 집회에서는 문맹퇴치의 기관을 설립하라. 각 성당, 각 공소, 각 동리에는 반드시 언문학교부터 먼저 시작하라(≪가톨릭연구≫, 1934년 2월호).

 홍용호 신부는 선교의 선행사업으로서 문맹퇴치와 계몽을 주장하였지만 당시 민족사회의 시대적 당면과제였던 문맹퇴치의 의지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천도교는 3·1운동 후 문화운동에 주력하였는데 3·1운동 후의 국내 민족운동이 민족실력 양성운동·문화운동·사회운동·교육운동으로 전환됨에 따라 천도교도 이와 같은 성격의 민족운동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특히 천도교는 농민운동에 큰 비중을 두고 농민계몽·문맹퇴치에 주력했다.

 이처럼 각 종교단체를 비롯하여 부락공동 혹은 개인이 야학·강습소·개량서당 등 수많은 민중 교육기관을 설립·운영함으로써 문맹퇴치와 민중계몽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0년대에는 청년운동이 전국 각처에서 고조되었다. 각지에서 청년단체의 조직이 경쟁적으로 있게 되어 각종 청년단체가 조직되지 않은 지방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개신교·천주교·불교 등 종교단체의 청년단체들이 수없이 조직되었다.

 이들 청년단체들은 각종 활동을 전개하면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민중계몽·문맹퇴치를 위한 민중교육기관의 설립·운영이었다. 청년단체들은 당시 민족의 시대적 선결과제였던 민중의 문맹타파와 계몽을 위해 야학이나 개량서당을 설립·운영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청년 스스로가 직접 교육을 담당하고 청년회관이나 기타 건물을 이용하면 용이하였기 때문에 청년단체들은 거의 예외없이 민중계몽교육·문맹퇴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2월에 창립된 조선청년연합회 헌장에는 본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종 사업을 행하는 가운데 강습회 또는 야학을 개최하고 청년취학의 편의를 도모할 것을 결정하고 있다.044)≪매일신보≫, 1920년 12월 2일.
이돈화,<조선청년 연합회의 성립에 취하여>(≪개벽≫, 1921년 1월호).

 청년운동 못지않게 노동운동에서도 문맹퇴치 활동이 전개되었다.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로 강조된 것이 노동자의 계몽을 위한 사항이었다.

 1920년 4월 최초의 노동운동 단체로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는 노동사회 개선의 목적을 위해 첫째로 지식계발을 실천사항으로 주장하였다. 무지몽매한 노동자들의 계몽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고 노동자들의 자녀들은 경제사정으로 학교에 취학시킬 수 없어 이들을 교육하는 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이것은 단순히 농민의 문제라기보다 전민족적 문제였던 것이다.045)노영택, 앞의 글(1994). 정종명은<농민의 문맹퇴치>라는 제목으로≪조선사상통신≫에 기고한 글에서 “무산대중의 계급적 해방운동이 중요하다. 무산무식한 조선농민을 훈련하는데 최대의 정력을 경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신문잡지라도 읽을 수 있도록 문맹퇴치해야 한다”046)≪朝鮮思想通信≫, 1928년 1월 30일.라고 주장하였다.

 임병천도 80% 이상의 농민 대부분이 문맹이니 농민의 문맹타파를 위해 농민야학·여성야학을 설립하고 농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047)≪朝鮮思想通信≫, 1929년 3월 26일.

 일제시기 서당과 야학 등 민중교육기관은 민중계몽과 실력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서당과 야학에 의한 민중교육운동은 민족교육운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정규사립학교는 학교수가 제한적이었고 도시중심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민중교육기관은 9할이 농민이었던 일제시기에 전국 보편적 민중교육기관이였고 민족주의교육에 기여할 수 있었다.

 공립학교에서는 지적교육은 우세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민족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민중교육기관의 교육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

 3·1운동 후 민족의 주체이며 역사의 주체로 등장된 민중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실력을 향상시킨 것은 민중교육운동의 공헌이었다고 할 수 있다.048)노영택, 앞의 책, 126쪽. 다음 표는 각종 초등학교와 서당의 통계표인데 일제시대 교육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야학은 공식 통계자료가 없기 때문에 제외하였다.

년도별 공립보통학교 사립보통학교 사립 각종학교
(일반 종교)
총학생수(명)
교수(명) 학생수(명) 교수(명) 학생수(명) 교수(명) 학생수(명)
1911 152 21,842 54 2,428 2,085 ? ?
1912 342 41,063 25 2,021 1,323 55,313 96,376
1913 366 47,066 18 1,646 1,285 57,514 104,520
1914 382 50,753 20 1,834 1,214 53,885 106,472
1915 410 58,757 17 1,436 1,090 51,725 111,918
1916 426 65,653 19 1,489 973 48,643 115,785
1917 435 73,157 24 2,055 827 43,643 118,855
1918 469 76,061 36 3,613 780 35,197 114,871
1919 535 76,918 33 3,295 698 34,975 115,188
1920 641 102,024 38 4,819 661 51,008 157,851
1921 755 152,305 36 6,308 625 57,074 215,687
1922 900 228,674 44 8,373 653 71,157 308,204
1923 1,040 293,318 56 11,643 637 68,443 373,404
1924 1,152 332,222 63 11,634 628 68,520 412,376
1925 1,242 365,741 78 17,102 583 55,622 438,465
1926 1.309 387,747 81 18,070 573 49,795 455,613
1927 1,395 400,037 81 19,460 550 46,248 465,745
1928 1,463 409,584 81 19,803 533 47,908 477,295
1929 1,620 420,608 78 19,966 508 47,689 488,263
1930 1,750 436,475 79 21,041 489 47,422 504,938
1931 1,860 445,813 80 21,827 461 45,647 513,287
1932 1,980 470,074 82 23,563 446 46,122 539,759
1933 2,291 606,446 83 26,645 457 57,274 690,365
1934 2,403 679,909 86 29,864 430 62,927 772,700
1935 2,546 759,790 87 33,017 412 70,128 862,935
1936 2,692 842,247 85 35,086 394 75,027 950,360
1937 2,776 946,743 92 39,793 393 80,352 1,056,888
1938 2,878 1,081,908 100 45,000 357 77,722 1,204,630
1939 3,005 1,242,017 117 51,754 335 75,989 1,369,760
1940 3,129 1,407,695 134 57,878 300 69,981 1,535,554
1941 3,252 1,589,106 145 63,548 284 69,745 1,722,399
1942 3,360 1,794,291 141 63,454 252 54,323 1,912,068

<표 1>각종초등학교 누년통계표 (1911년∼1942년)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의거(노영택,<일제하의 서당연구>,≪역사교육≫16, 1974;노영택,≪일제하 민중교육운동사≫, 탐구당, 1979, 98∼99쪽에서 재인용).

년도별 서당(개) 직원수(명) 생도수(명)
1911 16,540 16,711 16,771 141,034 570 141,604
1912 18,238 18,435 18,435 168,728 349 169,077
1913 20,268 20,807 20,807 195,298 391 195,689
1914 21,358 21,570 21,570 203,864 297 204,161
1915 23,441 23,674 23,674 229,028 522 229,550
1916 25,486 25,831 25,831 258,614 917 259,531
1917 24,294 24,507 13 24,520 264,023 812 264,835
1918 23,369 23,590 23 23,613 260,146 829 260,975
1919 24,043 24,173 12 24,185 275,261 659 275,920
1920 25,492 25,602 19 25,621 290,983 1,642 292,625
1921 24,195 24,507 24 24,531 295,280 2,787 298,067
1922 21,057 21,663 36 21,699 275,952 4,910 280,862
1923 19,613 20,240 45 20,285 251,063 5,788 256,851
1924 18,510 19,067 34 19,101 226,430 5,324 231754
1925 16,873 17,347 43 17,390 203,580 4,730 208,310
1926 16,188 16,524 41 16,565 192,241 4,597 196,838
1927 15,069 15,485 24 15,509 184,541 4,719 189,260
1928 14,957 15,429 40 15,469 186,195 5,477 191,672
1929 11,469 11,885 23 11,908 157,066 5,181 162,246
1930 10,036 10,477 73 10,550 144,913 5,979 150,892
1931 9,208 9,527 67 9,594 140,034 6,867 146,901
1932 8,630 8,939 70 9,007 134,639 8,029 142,668
1933 7,529 7,889 75 7,964 137,283 10,822 148,105
1934 6,843 7,997 111 7,408 139,381 14,303 153,684
1935 6,209 6,766 110 6,876 142,468 19,306 161,774
1936 5,944 6,455 88 6,543 147,558 22,441 169,999
1937 5,681 6,110 101 6,211 145,365 27,421 172,786
1938 5,293 5,724 108 5,832 142,055 30,401 172,456
1939 4,686 5,099 140 5,245 129,967 34,540 164,507
1940 4,105 4,599 156 4,755 121,837 36,483 158,320
1941 3,504 3,941 156 4,097 111,240 38,944 150,184
1942 3,052 3,556 173 3,729 106,033 47,751 153,784

<표2>서당 누년 통계표 (1911년∼1942년)

<盧榮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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