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Ⅱ. 언론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1)≪시대일보≫

 ≪조선일보≫·≪동아일보≫보다 4년 늦게 출발한 또 하나의 민간지가≪時代日報≫이다.≪시대일보≫는 1926년 8월 무렵에 폐간하였으나 뒤를 이어≪中外日報≫(1926. 11. 15),≪中央日報≫(1931. 10. 14),≪朝鮮中央日報≫(1933. 3. 7)로 이름이 바뀌면서 1936년 9월 4일까지 3대 민간지의 하나로 발행되었다. 이 신문은 제호가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경영주가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창간하는 형식을 취했다. 발행허가를 새로 얻고, 제호가 달라지고 경영주가 바뀌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각기 별개의 다른 신문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문에 관련된 사람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경영주와 제호는 달라지면서도 기존 신문의 시설과 인력을 인수하여 창간되었으므로 실은≪시대일보≫에서 출발한 하나의 신문이 제호를 바꾸고 경영주를 달리하여 계승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시대일보≫는 崔南善이 1924년 3월 31일에 창간하였다. 최남선은 3·1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뒤에 1922년 9월 3일부터 타블로이드판 20페이지의 주간 신문≪東明≫을 발행하였는데 이듬해 6월 3일까지 통권 41호를 발간한 후 주간 신문의 발행은 중단하고 새로운 일간지≪시대일보≫를 창간하였다.

 ≪시대일보≫는 편집과 내용이 기존 신문보다 신선하여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최남선은 신문 경영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본을 계속해서 투입할 만한 재정적인 능력이 없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일 계획이었으나088)김상태 편역,≪윤치호일기≫(역사비평사, 2001), 1923년 10월 13일(248쪽), 11월 4일(248∼249쪽)에 최남선이 윤치호를 상대로 시대일보의 창간자금을 모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약속했던 사람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문은 구독료와 광고료가 주된 수입원인데 구독자의 숫자도 제한되어 있었고, 빈약한 당시 조선의 경제 상황에서 광고의 유치도 여의치 않았다.

 최남선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창간 2개월 후인 6월 2일, 邪敎집단이었던 普天敎에 발행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경영에 소요되는 자본을 끌어들인다는 계약을 맺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적으로 일대 물의를 빚게 되어 최남선은 신문 경영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089)정진석, 앞의 책(2001b), 410∼416쪽. 최남선의 후임으로는 洪命憙가 사장에 취임하였으나 경영난을 타개하지는 못하고 1926년 8월 중순부터 발행을 중단하였다. 이와 함께 무한 책임 사원 전원이 퇴사하여 회사는 해산되었고,≪시대일보≫의 발행 허가도 소실되어 2년 5개월 정도의 짧은 수명으로 종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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