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1) 국어연구 단체

 1910년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직후 周時經 등 국어연구자들은 1908년에 조직된 國語硏究學會를 폐지하였다가, 1911년 9월 朝鮮語文會를 조직하여 국어강습소를 이은 朝鮮語講習院을 운영하여 왔다. 국어연구학회나 조선어문회는 주시경이 주도한 국어강습소의 강습생을 중심으로 조직하였던 단체로 1910년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통치기에 있어서는 강습활동을 통하여 600여 명의 강습생을 배출하였으며, 연구자들은 개인적으로 국어연구를 진행하였다.

 1919년 3·1운동으로 한국인의 거족적인 저항에 접한 일제는 ‘문화정치’라는 이름으로 무단통치의 외형만을 바꾸어, 부분적으로 언론·출판·집회·결사를 허용하였다. 이에 강습활동에 치우쳐 있던 국어연구자들이 국어연구를 보다 체계화·조직화하기 위하여 1921년 朝鮮語硏究會를 조직할 수 있었고, 이 단체는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개칭하였으며, 1947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의 국어연구와 국어운동은 대체로 이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가 주도하여 이루어졌다.

 1931년은 국어연구단체가 여러 개 조직된 해였다.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학회로 개칭되었을 뿐만 아니라, 京城帝國大學 朝鮮語及文學科 졸업생들에 의하여 朝鮮語文學會가 만들어졌다. 또한 조선어학회가 전개한 문자통일운동의 내용에 반대하는 일부 연구자들이 朝鮮語學硏究會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34년에는 국학 전반을 다루는 震檀學會가, 1935년에는 朝鮮音聲學會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연구단체들은 국어연구와 국어운동에 진력하였으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하여 그 활동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조선어학회의 경우에는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상당수의 관계자들이 해방될 때까지 투옥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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