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2) 국어연구

(2) 국어연구

 일제 강점기의 국어연구는 국어체제의 통일에 목표를 두고, 철자법과 표준어, 그리고 외래어 표기법 등의 정리에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한 국어통일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이와 함께 국어학 전반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1910년 이후 1945년까지 국어연구자들이 발표한 논저·논설은 철자·문자·어휘 등 언어문자의 통일·정리와 관련된 주제에 집중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문법에 관한 저술은 30여 권이 넘었고, 국어 관계 논문과 논설은 1,100편에 달하였다.116)朴炳采, 위의 글, 477∼479쪽. 이는 국어의 연구가 체계화되고 있었으며, 특히 문법의 정리에 깊은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일제는 합병 직후 국어연구기관이었던 國文硏究所를 폐쇄하여 한국어를 공개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봉쇄하였기 때문에, 국어연구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구자로는 주시경과 그의 문하에서 직접·간접으로 배출된 金枓奉·李奎榮·김윤경·최현배·이윤재·정열모·鄭寅承·권덕규·이병기·白南奎·신명균·장지영 등과, 계열을 달리 하지만 安 廓·박승빈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국어학 관련 주요 저서는 다음 것들이 있다.

周時經,≪말의 소리≫, 新文館, 1914. 金枓奉,≪조선말본≫, 新文館, 1916;≪깁더 조선말본≫, 上海:새글집, 1922. 安 廓,≪朝鮮文法≫, 滙東書館, 1917. 李奎榮,≪現今朝鮮文典≫, 新文館, 1920. 權悳奎,≪朝鮮語文經緯≫, 廣文社, 1923. 李奎昉,≪新撰朝鮮語法≫, 以文堂, 1923. 李常春,≪朝鮮語文法≫, 開城嶺南書館, 1925. 崔鉉培,≪우리말본≫, 延禧專門學校 出版部, 1929·1937. 張志暎,≪朝鮮語綴字法講座≫, 活文社, 1930. 姜 邁,≪精選朝鮮語文法≫, 博文書館, 1932. 申明均,≪朝鮮語文法≫, 常識普及會, 1933. 朴勝彬,≪朝鮮語學≫, 朝鮮語學硏究會, 1935. 金允經,≪朝鮮文字及語學史≫, 朝鮮記念圖書出版館, 1938. 梁柱東,≪朝鮮古歌硏究≫, 博文書館, 1942. 崔鉉培,≪한글갈≫, 正音社, 1942.

 그러나 이들 저술의 상당수가 문법에 관한 것이었고, 그 대개가 학교 교과서로 학문적 업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문법서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1910년 주시경이 발간한≪국어문법≫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김두봉의≪조선말본≫과 최현배의≪우리말본≫이 있다. 특히 1,200쪽의 분량인≪우리말본≫은 부피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종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이전의 문법서들이 분석적이었던 것과는 달리≪우리말본≫은 종합적으로 풀이하고, 현대언어학적인 이론의 토대 위에서 품사분류의 방법과 음성학을 포함시켰다. 또한 그 내용도 소리갈(음성학)·씨갈(詞論)·월갈(문장론)로 구성되어 실용적인 측면이 크게 강조되었다. 한편 문법연구는 대체로 言文修理, 곧 국어·국문의 정리를 위한 이론적 근거의 확립과 그 응용화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론이 1933년≪한글마춤법통일안≫으로 실천화되었다. 이렇듯 국어학자들은 품사론 중심의 규범문법 체계를 세우고, 국어의 형태구조 규명에 주목하였던 것이다.117)문법연구의 전반에 대해서는 고영근,<한국어문법연구 1세기>(≪역대한국문법의 통합적 연구≫, 서울대 출판부, 2001)을 참고할 것.

 국어의 역사적 연구로는 김윤경의≪朝鮮文字及語學史≫와 최현배의≪한글갈≫이 두드러진다. 두 책 모두 800쪽이 넘는 大著로, 訓民正音의 원리와 변천을 추적하였다.≪조선문자급어학사≫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문자로부터 시작하여 훈민정음을 정리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의 국어연구를 개괄하였다. 특히 김윤경은 비록 실재 여부가 의심스러우나 많은 문헌에서 고대에 문자가 있었음을 밝히고 오늘날 전하지 않는 것들을 제시하였으며, 국어학사에 관련된 자료집의 성격까지 지니고 있었다. 또≪한글갈≫은 역사편에서 훈민정음의 창제와 발전을 다루고, 이론편에서는 훈민정음에 대한 국어학적 검토를 하였다. 김윤경이 학설의 소개를 중심으로 하였다면, 최현배는 그 비판에 주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梁柱東의≪朝鮮古歌硏究≫는 鄕歌를 해독한 연구서로, 오쿠라 싱페이(小倉進平)가 1929년에 발표한≪鄕歌及び吏讀の硏究≫(京城帝國大學)에 자극을 받아 이룬 업적이었다. 1,000쪽에 가까운 이 저술은 借字로 향가를 해석하면서 문학적인 역량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는 중세국어의 어법으로 향가의 해독을 시도하였는데,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치밀한 고증으로 향가 25수를 모두 해독하였던 것이다.118)≪우리 말본≫·≪조선문자급어학사≫·≪한글갈≫·≪조선고가연구≫에 대해서는≪한글≫190(1985) 특집을 참조.

 1920년대 국어연구는 훈민정음의 연원을 캐는 연구가 많았으며, 1930년대에는 철자법 논쟁이 주류를 이루며 고어 해석과 어원연구 등 국어사적 연구도 병행되었다. 1940년대에는 국어사와 국어학사의 연구에 편중된 현상을 보였는데, 1940년≪訓民正音解例本≫의 발견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1930년대부터 이숭녕·柳應浩·김선기 등에 의하여 서구의 언어이론이 도입되기 시작하여, 국어연구에 기여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일제 강점기의 국어연구는 1930년대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내었는데, 연구자도 증가하였지만 1920년대부터 발간된 잡지에 발표되던 국어 관련 논문들이 1930년대에 이르러 학회의 기관지를 통하여 더욱 증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19)金敏洙,≪新國語學史≫(一潮閣, 1981), 249∼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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