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Ⅳ. 종교
  • 3. 불교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2) 독립운동에 동참

(2) 독립운동에 동참

 3·1운동에 참여한 승려와 불교청년들은 3·1운동의 영향으로 나타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및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에 동참하였다. 1919년 4월 23일, 임시정부의 법통을 제공한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국민대회의 취지서>에는 구암사 승려였던 박한영과 월정사 승려인 李鍾郁이 대표로 나온다.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에는 승려 출신도 있었는바, 강원도 대표로 피선된 宋世浩는 月精寺 출신 승려였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국내 특파원으로 활동한 승려도 있었다.

 한편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내 불교계에서는 불교계 대표를 상해에 파견함과 동시에 독립자금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중앙학림 출신인 金法麟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 사료편찬사업을 추진하자 그 관련 사료를 전달하였다. 불교청년들이≪革新公報≫라는 비밀신문을 만들어 국내에 배포한 것도 임시정부를 배경으로 한 활동이었다. 그밖에 임시정부와 연결된 대한민국청년외교단·대동단·대한독립애국단 등에서 승려 출신인 이종욱·송세호·鄭南用·申尙玩·李雲坡 등의 활동도 유의할 내용이다.

 상해에서의 불교계 활동 중 가장 유의할 것은<僧侶獨立宣言書>제작·배포였다. 1919년 11월 19일에 뿌려진 이 선언서는 대한승려연합회 소속 중견승려 12명의 가명으로 발표된 것이었는데, 일제에 정면으로 항쟁하겠다는 불교계의 독립정신을 구현한 것이었다.318)金素眞,≪1910年代의 獨立宣言書 硏究≫(숙명여대 박사학위논문, 1994), 205∼223쪽. 더욱이 이 선언서 발표를 이면에서 주도한 신상완·白初月·김법린·白性郁 등은 전국 승려를 연합하여 대일항쟁을 추진하려는 결사체인 義勇僧軍을 조직하려다 일제에 피검되기도 하였다.319)金昌洙,<日帝下 佛敎界의 抗日民族運動>(≪伽山李智冠스님華甲紀念論叢-韓國佛敎文化思想史≫下, 81∼89쪽.

 불교도들의 독립운동 참여는 만주군관학교 입교와 군자금모집 활동으로도 나타났다.320)정광호, 앞의 글(1990), 528∼529쪽. 해인사 출신 승려인 강재호·김봉율과 대둔사 출신 승려인 박영희 등은 만주의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였다. 봉선사에서 승려로 활동한 李耘虛와 김성숙이 만주의 서로군정서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한 것도 유의할 내용이다. 그리고 만주지역의 독립군의 군자금을 모집한 승려의 활동은 전국 사찰을 배경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해인사 출신인 김봉율과 박달준이 경상남북도와 충청북도의 사찰을 순방하면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제에 피체되었음이 그 실례이다. 통도사 승려인 金九河는 통도사 운영자금으로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나, 일제에 발각되어 문초를 받았다는 정황도 유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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