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Ⅴ. 과학과 예술
  • 2. 음악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1945년 8월 해방에 이르는 9년간을 전시체제로 전환하여 한반도를 전쟁수행기지로 삼았다. 대륙진출을 위하여 한국을 병참기지화시키고 전지체제하의 파쇼적 통치를 강화하였다. 군수물자의 생산현장에서 ‘음악’을 생산을 독려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또 한국은 일본정신에 의한 충량한 신민으로서 황민화가 강제화 되고 있었다. 음악은 바로 한국의 병참기지화와 황민화정책을 선동·고무시키는 데 동원된 일제의 으뜸가는 수단이었다. 전장과 경제현장, 학교, 음악회장, 각종 집회, 신문, 방송, 다방, 레코드 등 음악으로 소통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든지 이용되었다. 따라서, 전시체제하의 제3기는 일본음악체계로 전 한국의 소통구조를 장악하였으니, 황민화는 다름아닌 皇音化이었다.

 일제는 음악소통구조를 황민화정책으로 장악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치로서 먼저 음악계를 정비·조직해나갔다. 1937년 조선문예회,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1941년 조선음악협회, 1942년 경성후생 실내악단, 1944년 대화악단 등의 관제단체가 연달아 결성되고 지속된 것이 그것이다. 이들 단체는 서로 독립된 단체가 아니라, 언제나 같은 지배체계하에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활동하였다.

 조선문예회는 1937년 5월 2일 경성제국대 타카기(高木市之助) 교수를 회장으로 선임하고, 최남선·이광수를 비롯한 문인들과 김영환·박경호·윤성덕·이종태·하규일·함화진·현제명·홍난파 등 음악인들과 함께 기타 일본인을 포함하여 17명을 회원으로 조직된 친일단체였다.519)노동은·이건용,<일제하 음악사회의 성격>(≪민족음악론≫, 한길사, 1991), 308쪽. 조선문예회는 하규일과 함화진 등 전통음악계도 선임하여 1929년에 창립된 조선가요협회보다 훨씬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악단과 문단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조직·운영되었다는 점에서도 황민화정책의 핵심단체였다.

 시국대응 전선 사상보국연맹은 경성관찰소장인 사게 요시로오(提良明)와 경성지부 간사 현제명 등이 중심이 되어 1938년 7월 24일에 결성하였다.

 국민총력 조선연맹은 1940년 10월 16일 “국체의 본의에 기하여 내선일체의 실을 거하며 국방국가체제의 완성, 신동아 질서 건설에 매진할 것”을 취지로 일본에 이어 조선총독부가 전국적으로 조직한 최대의 조직체로서, 총재에 총독, 부총재에 총독부 정무총감, 문화부장에 야나베(失鎬永三郞)를 비롯하여 김억 등의 문화위원 외에 음악위위원으로 히라마 분쥬(平間文壽)·오바 이사노스케(大場勇之助)·홍난파·박경호 등 68명이었으며, 5개 부서 중 문화부가 문화협회를 조직하고 산하의 조선음악협회를 관장하며, 그 연락계로 히라마가 주관하였다.

 조선음악협회는 1941년 1월 25일에 “악단을 통하여 직역봉공을 하고, 조선음악계의 신체제운동을 목표”로 조직한 최대의 친일음악단체이다. 회장은 쇼하라(鹽原時三郞) 조선총독부 학부국 국장, 고문은 야나베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장과 미하시(三橋孝一郞)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등이었다. 한국 음악인으로는 김관·계정식·김재훈·함화진·김원복 등이 이사로, 홍난파·김세형·이애내·임동혁·이종태·김영환·김메리 등이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이외에 함화진이 조선음악부장이었다. 조선음악협회는 1944년 7월에 개편되어 조선총독부 정보과장인 아베가 신임회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이사로서 일본인들과 함께 오바와 쿠로야마(玄山濟明, 현제명)가 새롭게 영입되었다.

 경성후생실내악단은 “전시하의 전시하의 국민들에게 건전한 음악과 음악자체의 예술성을 국민음악 挺身隊로서 활동, 보급”하기 위하여 1942년 5월에 결성된 친일단체였다. 대표에 김생려, 단원으로 김성태·김천애·이인범·김태연·이유성·이인형·박평수·이용철·안성교·이강렬 등이 활동하였다. 이 악단은 1944년 5월에 쿠로야마 체제로 개편되었으며, 상무이사에 스즈키 칸이치로오(鈴木貴一郞)와 단원으로 김원복·이흥렬·정희석·나운영·이규봉·고영희·김학상·정영재·김영애·이종태가 맹활동하였다.520)노동은·이건용, 위의 책, 308∼310쪽.

 대화악단은 1944년 10월에 “反국가적 음악을 축출하고 雄偉한 일본음악을 수립”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친일단체로서 테너 윤두선을 단장으로 선임하고, 이흥렬·유은경·황학근·김완우·유광덕·이인구·우달순·박영하·송경신·오오야마(大山英雄), 모오리(毛利基盛) 등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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