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Ⅴ. 과학과 예술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한국에 있어 서양 미술양식의 도입은 간접적인 견문과 서양인 화가들의 직접 내한 등의 단계를 거쳐 1910년대에 와서야 한국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수학의 단계로 들어간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서양미술 수업은 1909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高羲東이 입학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고희동이 남긴 자전적 기술에 의하면,538)고희동,<나의 화필생활>(≪서울신문≫, 1954년 3월 11일). 대한제국 궁내부 주사로 있던 그는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술과 그림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처음은 전통회화를 수업하였으나 창조의 정신이 비어있는, 형식만의 전통회화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서양화를 선택했다고 한다. 고희동이 서양화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그가 누구보다도 일찍이 궁정을 중심으로 한 외교적 교섭에 참여할 수 있었고 서양문물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희동에 이어 동경에 유학한 사람들로는 1911년 金觀鎬, 1912년 金瓚永, 1913년 羅蕙錫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 회화영역은 전문 화공들의 소속기관이자 畵事 업무의 국가기관이었던 圖畵署가 폐지되자, 뜻 있는 서화가들이 후진양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기관을 개설하여 발전시켜 나갔다. 1911년에 창설된 경성서화미술회는 書科와 畵科를 두고 각각 3년 연한의 수업과정을 설치하였다. 교강사진은 당대 일급의 서화가들인 安中植·趙錫晋·丁大有·金應元·姜璡熙 등으로 구성되었다. 여기를 통해 배출된 신진 서화가들로는 李用雨·吳一英·金殷鎬·朴勝武·李象範·盧壽鉉·崔禹錫 등이다. 1910년대 이후 전통화단은 이들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안중식·조석진으로 대표되었던 조선조 후기는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로의 전기를 맞고 있다. 서화미술회와 유사한 교육기관이 서울과 지방에서 생겨났는데 1915년 金圭鎭에 의해 설립된 書畵硏究會와 1919년에 출범한 고려화회가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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