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Ⅵ. 민속과 의식주
  • 3. 식생활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723)이후는 다음을 참고하여 서술하였음.
村上唯吉, 앞의 책, 81∼85·46∼70쪽.
황혜성, 앞의 글, 1195∼1207쪽.
總督官房文書課,≪朝鮮の物産≫조사자료 19(朝鮮總督府, 1927), 261∼290·667∼693쪽.
농산물의 생산량은 첫째가 쌀(米), 둘째가 보리(麥), 셋째가 조(粟), 그 다음으로 콩(大豆)·팥(小豆)·피(稷)·옥수수(玉蜀黍)·목화·차수수(蜀黍)·담배·귀리(燕麥)·수수(蜀)·대마(大麻)·깨(荏)·뽕(桑)·모시(苧麻)의 순으로 생산되었다.

 쌀:일제는 한국 쌀의 증산정책을 세워 일본 본토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국의 농정에 힘을 기울였다. 쌀은 나락으로 매매되거나 또는 정백하여 매매되었는데, 멥쌀과 찹쌀·육미(밭벼·찰벼)가 있었다. 쌀은 전라·경상·경기도에서 많이 나는데 생산량은 년간 1,200만 석이 되었다. 경성·인천·목포·군산·평양·진남포 등의 주요 집산지에서는 일본인들이 정미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맥류:맥류 중 생산량은 보리가 가장 많았고, 둘째가 밀, 셋째가 쌀보리였으며, 이외에 귀리(燕麥)·메밀(蕎麥) 등이 생산되었다. 맥류 세 가지의 생산량은 합하여 약 600만 석이 되었다.

 남도는 기후가 온난하여 가을갈이 보리를 재배하기에 적당하며, 평남·함남지방은 겨울은 길고 혹한이어서 봄갈이 보리 재배가 적당하였다. 경상·전라·충청지방에서는 논에서 쌀과 보리를 이모작으로 재배하기도 하였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어려웠다.

 밀은 추위를 견디는 힘이 보리보다 강한 작물이므로 평남·함북을 제외한 모든 지방에서 가을갈이 밀이 재배되었다. 남부는 밀보다는 보리 재배가 대부분이었는데 경북이 다른 지역보다 밀 재배량이 약간 많은 편이었다. 경기 이북의 강원·황해·평남 등지는 보리보다는 밀의 재배가 유리하였는데, 특히 서북지방의 밀은 점도가 높고 품질이 매우 양호하였다.

 두류:콩은 아주 중요한 산물의 하나로 수출량도 쌀에 이어 둘째였다. 경기도에서는 삭령·마전 등 임진강 연안의 군에서 나는 것이 유명한데 그 중 경기의 장단콩, 경남의 울산콩, 함남의 단천콩이 품질이 좋았다. 함남에서 가장 많은 생산되었고 일년 생산량은 약 250만 석이었다. 콩은 기름과 장의 원료가 되고, 쌀이나 잡곡과 섞어 밥을 짓고, 콩 그대로 또는 콩나물·두부로 가공하여 찬물의 재료로 쓰였다.

 팥은 품질이 좋고 수확량도 많은데, 평남·황해도지방에서 산출되는 진남포팥을 가장 많이 수출하였다. 팥은 붉은팥(赤小豆)과 거피팥(去皮小豆)이 있었는데, 잡곡밥에 자주 넣어 먹어 그 소비량이 많았다. 그 외 검은콩·녹두·오색콩·완두·강낭콩 등이 생산되었는데, 일년간 팥 생산량은 약 85만 석이고, 기타 두류는 약 5만 8,000석이었다.

 잡곡:조는 보리 다음으로 중요한 작물로 황해도·평안도 등 서북부지방에서 널리 재배되었는데, 콩과 옥수수와 섞어서 심는 경우도 많았다. 조는 서북부지방 농민들의 상식으로 이용되었고 대체로 일년 생산량은 약 320만 석이었다.

 기타 잡곡 중에 피·수수·차수수·옥수수·귀리 등은 밭에서 경작하여 농민들이 상식으로 삼았다. 잡곡의 생산량을 보면 피는 90만 석, 수수 11만 5,000석, 차수수는 46만 석, 옥수수는 35만 석, 귀리는 26만 석이었다.

 밀가루:밀의 산출은 많았으나 농가에서 가루로 하여 국수·과자를 만드는 등 수요가 매년 증가되어 수입해 오고 있었다. 종래 제분은 가내 가업이었으나, 1918년부터 대규모의 회사로 진남포에 만주제분, 용산에 풍국제분이 생겼다.

 제면:전통적인 국수는 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밀어 칼국수로 하거나 국수틀에 넣어 눌러서 만드는 방법이 이용되었다. 이후 공장에서 기계로 만드는 국수의 기술이 도입되어 경성·대구·부산·평양 등지에서 가는 밀국수(素麵), 굵은 밀국수(우동), 메밀국수 등이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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