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광복 전후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 2) 신탁통치 논쟁과 좌우대립
  • (5) 탁치문제에 대한 논쟁

(5) 탁치문제에 대한 논쟁

 해방 당시의 찬·반탁론이나 그에 대한 최근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탁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3가지 견해로 나누어진다.

 첫째, 신탁통치는 당시 국제 여건상 과도기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이었고 따라서 그 자체 내에 진보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는 탁치지지론적, 긍정론적 입장이다. 이 견해는 당시의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익계열의 노선이 대표적이었다.197)변형윤 외,≪분단시대와 한국사회≫(까치, 1985). 이는 신탁의 구체적 내용이 조선민족의 임시정부 수립에 있는 만큼 당시의 국제 역학관계상 오히려 이를 수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었으며, 감성적인 즉각적 민족독립론에 입각한 반탁운동은 오히려 친미독재세력 및 분단세력이 등장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둘째, 탁치는 반민족적이고 반자주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특히 좌익계열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급전환한 것은 소련이 이에 적극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탁치반대론적 입장이다. 이 견해는 반탁운동으로 단결하지 않고 사대주의적인 찬탁을 좌익이 채택함으로써 민족적 혼란을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당시의 반탁론자들의 주장이었으며, 엄밀히 말해서 다시 순수 민족주의론자들과 반탁을 이용한 반공론자들의 주장으로 분류된다.

 셋째, 찬·반탁의 대립은 현실적으로 민족해방, 통일운동의 분열을 야기시켜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는 기틀이 되었으며, 따라서 민족통일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고 이른바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찬·반탁운동 해악론의 입장이다. 이 견해는 찬·반탁운동의 대립은 그 자체로서 탁치라는 사안에 함몰되어 당시의 급박한 과제, 가령 토지문제·일제잔재 청산문제 등을 뒤로 미루어 놓음으로써 친일·친미세력의 재등장에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견해는 탁치문제 중에서 이른바 모스크바 3상협정에 관하여 남한의 여러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라는 적극적 대처 방안의 관점에서 견해들을 분류해 놓은 것이다.

 탁치문제가 국내에 제기되어 전개된 국내 정치세력의 이른바 반탁·찬탁의 좌우대립은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 치욕스런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외세에 의하여 강요된 분단구조에서 국내 정치세력이 단결된 모습으로 싸우기는 커녕 오히려 분단구조에 영합하여 분열을 자초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른바 ‘내쟁적 측면’을 표출하여 외세의 분단 책임을 면탈시켜 주었으며 미·소대립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시점인 1946년 초에 그 대립의 쟁점을 제공하여 대립을 부추기게 되어 분단고정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탁이나 모스크바 결정 지지노선이나 모두 부분적인 타당성을 지닌 논리일 뿐이며 민족해방과 통일이라는 과제의 실현 면에서 볼 때 어느 쪽 길이 옳은 길이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양쪽 노선 모두 문제가 있는 논리였다. 당시의 이론가가 모스크바 결정에 숨겨져 있는 미국과 소련의 다른 의도를 분리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총체적으로 인식하여 지지 아니면 반탁으로 대립하였던 것이 중대한 오류였다.198)일부에서는 모스크바 결정이 유일한 통일 방법이요, 후견제의 실시를 통하여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하여 지지노선의 타당성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의 반탁 열기를 무시한 박헌영식 지지노선 전환의 ‘오류’를 지적하는 ‘대중노선적 비판’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립하여 일을 그르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책임문제를 거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당시의 좌우대립을 자초한 좌익세력에 주체적 책임이 있으며, 이를 이용한 우익세력은 수혜자인 동시에 책임 있는 당국자이다. 탁치문제에 관해 좌·우 모두는 민족문제 해결의 관점인 민족해방, 민족통일의 시각에서 조망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장과 한정된 정보에 입각해서 단기적·자의적으로 조망하였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만을 확대하려는 근시안적인 주장만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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