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1. 광복 전후의 통일국가 수립운동
  • 2) 신탁통치 논쟁과 좌우대립
  • (6) 신탁통치 문제 이후의 정국

(6) 신탁통치 문제 이후의 정국

 탁치 이후 정국의 특징은 한마디로 해방 직후의 상황과 비교하여 우익진영의 힘이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다는 점이다. 해방 직후 좌익에 대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우익이 이제는 좌익진영을 상대로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독자적인 통일전선체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힘을 배경으로 이제 독자적인 헤게모니 장악까지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신탁통치 문제로 인해 촉발된 좌우대립은 ‘민족적 치욕’이었다. 외세에 의하여 강요된 분단구조에 국내 정치세력이 단결된 모습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구조에 영합하여 분열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분열적인 모습은 외세의 분단 책임을 합리화시켰으며 미·소대립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시점인 1946년 초에 미·소대립의 쟁점을 제공하고 부추기게 되어 분단 고정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좌우대립이 치열해지는 동안 청산되어야 할 대상인 친일파세력들은 반소·반공의 기치를 내걸고 미군정의 은근한 보호를 받으며 애국자로 탈바꿈하였다. 결국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한다는 민족사의 과제는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렸다.

 또한 남한에서의 대결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은 좌우익 정치세력보다는 이를 조성한 언론에 돌아갈 수도 있다. 당시의 오보는 단순한 실수였는가. 당시 언론사를 통제하였던 미군정이 이러한 오보를 묵과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히려 미국의 고위 당국자가 미국 통신사를 이용 사주하여 대중의 반소·반탁감정 형성을 조장한 ‘음모’가 개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모스크바 3상협정의 내용에 대한 오보가 없었다면 우익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획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있다.

<安鍾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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