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2. 미군정기의 경제
  • 3) 공업생산의 소장과 귀속사업체 처리
  • (2) 귀속재산의 처리와 자본의 재편

가. 귀속재산의 규모와 접수과정

 통상적으로 귀속재산이라 함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2차대전에서 패하고 한반도에서 쫓겨남에 따라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말한다. 즉 1876년 개항 이후 1945년 패망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축적해 놓은 재산으로서 조선에 대한 일제침략의 유산인 것이다. 이는 물적 성격면에서 사업체·부동산·동산으로 나누어지고, 좀더 세분하면 기업체·주식·농지·임야·대지·잡종지·주택·점포·창고·선박·동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귀속농지는 앞 절에서 살펴보았고 귀속사업체는 공장·상업회사·광산·은행과 같은 자본주의적 기업체와 상점·음식점·여관과 같은 자영업체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서는 중요한 경제적 의미를 갖는 기업체만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귀속공장의 경우 조사방법과 시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500∼2,500개에 달했으며, 미군정기에 이 귀속공장은 공업 노동자수나 생산액의 1/3∼1/2을 차지하였다. 해방 이후 귀속공장의 운영이 민영공장에 비해 더 부진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경제운영상 큰 몫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귀속기업체 중 공장 이외의 상업·해운업·광업 기업체는 공장수의 1/4 정도였다. 조선의 은행에는 중앙은행인 조선은행과 특수은행인 식산은행·조선저축은행 외에 일반은행으로서 조선상업은행·조흥은행이 있었고 帝國銀行지점·安田銀行지점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은행에 대해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주식 즉 귀속재산의 비율을 보면 조흥은행에서만 조선인 소유주식의 비율이 50%를 상회하였고 나머지 은행들은 귀속주식이 압도적인 귀속은행이었다.

 이처럼 남한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귀속재산의 처리에 대해 미군은 진주 전인 1945년 8월말에 다음과 같은 정책지침을 시달하였다. “일본 왕이나 일본정부가 전부 또는 일부를 소유하는 재산을 포함하여, 일본의 대외재산과 항복조건에 따라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에 소재하는 일본의 재산은 점령당국에 의해 발굴·보관되었다가 연합군의 결정에 의해 처리될 것이다.”516)Hojo Holborn, American Military Government:Its Organization and Policies, Infantry Journal Press, 1947, p.214.

 이에 따라 1945년 9월 8일 남한에 들어온 미군은 9월 10일부터 총독부로부터 사무를 인계받기 시작하고 주요 공공기관에 대해 즉각적으로 조사와 접수에 착수하였다. 조선은행을 필두로 경성전기·조선식량영단 등 남한 경제의 명맥이라 할 수 있는 기관들이 9월 말까지 착착 접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군정은 9월 25일 법령 2호<패전국 소속 재산의 동결 및 이전제한의 건>을 공포하여 남한내 일본의 국공유재산에 대해 동결조치를 내리고 사유재산에 대해서는 거래상의 제한을 가하였다. 이처럼 공공기관 등에 대해서는 진주 직후 미군정의 접수가 시작되었지만, 이것이 그 재산의 소유권을 미군정에 이전시키는 조치는 아니었다. 더욱이 여타 일본인 사유재산에 대해선 일단 일본인의 사유권을 인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8·15 이후 식민지 통치권력이 붕괴하고 미군정의 권력도 채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사유권은 물리적 강제력의 보호를 받기 힘들었고, 따라서 일본인들은 그저 본국으로 철수하기에 급급하였다. 해방이 되자 한국인들은 노동자자주관리운동을 통해 일본인의 기업체와 주택 등을 스스로 접수·관리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업체의 관리와 처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남한의 사회체제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문제였다. 그 때문에 미국은 마침내 일본인재산의 처리를 한국인, 특히 밑으로부터 일본인재산의 접수를 주도한 한국인세력에게 맡기지 않고 자국의 의도대로 하기 위해 1945년 10월 중순에 모든 일본인 재산을 미군정이 장악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이를 12월 6일 법령 제33호 제정을 통해 구체화했던 것이다.

 법령 33호<조선내 일본인재산의 권리귀속에 관한 건>은 모든 일본인재산의 소유권을 미군정이 장악하는 것을 표명하였다. 이는 사유재산의 존중이라는 기존의 국제법적 관례를 깨뜨리면서 단행된 조치였다. 미군정이 이러한 초법적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은 물론 조선에서의 일본지배를 청산하고 기업경영을 정상화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노동자자주관리운동과 같은 급진적 운동을 억압하고 미국이 바라는 질서를 수립한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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