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2. 미군정기의 경제
  • 5) 금융·재정과 무역·원조
  • (2) 미군정기의 무역·원조·남북교역

(2) 미군정기의 무역·원조·남북교역

 식민지시대 일본·조선·만주의 재생산경제권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한국은 새로운 대외경제관계를 수립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군정기의 무역은 해방 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물량이 대폭 줄어든 가운데 긴급물자를 수입하는 미군정청의 관영무역과 민간무역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표 16>에서 보듯이 이 중 미국의 원조에 근거한 관영무역이 압도적이었다.

무역형태 수입(달러) 수출(달러)
군정무역 198,850,240 -
過政무역 21,500,000 5,399,909
민간무역 4,513,062 2,316,466
총계 224,863,302 7,716,375

<표 16>미군정기의 무역 추이(1946년 1월∼1947년 12월)

조선은행 조사부,≪조선경제연보≫(1948),Ⅰ부-127쪽.

 미군정이 민간무역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1946년 1월 법령 39호<대외무역규칙>을 제정하고서부터였다. 그리고 1947년 과도정부 입법의원의 성립에 따라 법령 149호를 공포하면서부터 무역에 관한 법령과 규칙이 그런대로 정비되었다. 한편 미군정은 무역을 면허제나 허가제로 하고 물물교환을 법제화함으로써 무역통제를 실행하였다.

 그리고 일제하에선 일본과의 무역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반면에 8·15 이후엔 일본의 비중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그 대신 홍콩·중국·미국과의 무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또한 정치·경제적 혼란을 틈타 밀무역도 꽤 성행하였다. 그런데 전반적인 물자부족 상황에다가 1할을 넘지 않는 낮은 관세율은 무역업자에게 폭리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니, 오늘날 재벌의 상당수가 그 당시 무역업에 종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해방 이후 한국에 처음으로 도입된 미국원조는 점령지의 긴급구호를 위하여 제공되는 GARIOA원조였다. 이 GARIOA원조는 미군정이 끝날 때까지 3년간 계속되었는데 그 도입 물자는 식료품·의류·의약품·농업용품 등 주로 해방 이후 경제적인 파탄을 완화하고 사회혼란을 수습하려는 것이었다.

 이 원조의 총액은 3년 동안 4억 1,000만 달러에 달하였고, 그 중 식료품이 40%, 농업용품이 17%, 의류가 10%를 점하였다. 그리고 GARIOA 이외에 1947년 2월 해외청산위원회(OFLC)에서 차관형식으로 한국에 할당한 잉여물자가 2,500만 달러였고, 1945년 9월에서 1946년 6월 사이에 미군이 보유했다가 한국에 이양한 잉여물자가 1억 4,100만 달러였다.525)홍성유,≪한국경제와 미국원조≫(박영사, 1962), 48∼50쪽.

 물론 미국의 원조는 2차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재편한다는 커다란 전략속에 제공된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산업을 부흥하는 데 필요한 생산재 원조가 부족했다든가 하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조가 적어도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8·15 직후 원조에 의한 수입을 제외하고는 무역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남북지역간 교역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는 남북한의 복잡한 정치상황에도 불구하고 5·14 단전이 단행된 1948년 중반기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고 1949년 4월 남한정부가<남북교역 정지에 관한 건>을 공포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미군정은 해방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된 남북교역을 방치하다가 1946년 12월에 와서 비로소<조선연안교역의 감독>이라는 법령을 공포하여 남북교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주문진·용호도·여수 등 3개 소에 화물검사소를 설치하여 남북을 왕래하는 선박을 검사하되 허가품목은 반출입이 허용되었다. 또 1947년 8월의 법령 149호<대외무역규칙>에 의해 대외무역과 남북 지역간무역을 개념적으로 구분하였다.

연도 이북 受電 원조 발전船 국내 발전 합계
1946
1947
1948
1949
51,495
62,993
23.447
 
-
-
9,520
15,156
25,684
31,614
46,258
59,629
77,179
94,607
79,225
74,785

<표 17>남한의 전력공급 상황 (단위:KW)

조선은행 조사부,≪산업종람≫(1954), 68쪽.

 남북지역간 교역은 정식교역과 밀교역으로 나누어졌는데 밀교역은 법적으로 교역을 금지하거나 거래의 양적 제한이 설정된 품목들의 교역이었다. 1948년도 남북간의 교역물자를 보면 대북 반출품에선 생고무·광목·양철·면사·작업화 및 전구가 대종품목이었고 대북 반입품목에서는 전력 이외에 비료·카바이트·시멘트·마른 명태·가성소다 등이 주된 품목이었다.

 대북 반출품목 중에는 생고무처럼 남한이 해외에서 수입하여 다시 북한으로 반출하는 중계무역 상품도 있었지만 대개는 남한의 경공업제품이나 소형 기계기구제품이었고 이들과 북한의 화학공업제품이나 해산물이 서로 거래되었으니 이는 바로 남북간 산업분포를 반영한 것이었다. 북한으로부터의 전력공급이 남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표 17>과 같았다.

<金基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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