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3. 미군정기의 문화
  • 1) 문학
  • (1) 해방공간의 소설

(1) 해방공간의 소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과 함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자주적인 통일 민족국가 수립, 토지개혁, 친일잔재 청산 등의 깃발이 내걸리고 한국 사회는 대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파괴와 복구 또는 창조의 힘찬 맥동이 꿈틀대는 가운데 구성원들은 누구나 자신의 사고와 삶을 재조정해야만 하였다. 그 같은 재조정에는 현실의 변화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소극적인 측면도 물론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일제 파시즘의 강압에서 벗어나 역사 주체로서 복권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역사를 열어 나가는 주체로서의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이 더 강하였다. 이 같은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재조정의 활기가 넘치는 해방공간은, 혼란스러웠지만 충만한 가능성으로 미래를 향해 밝게 열려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소설 대부분의 한복판에는 저마다의 지향을 담아 싣고 흐르는 ‘길’이 가로놓여 있다. 그 길들의 의미를 살피면 이 시기 소설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蔡萬植의<歷路>(1946),<民族의 罪人>(1948),<落照>(1948),<妻子>(1946)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민족적 자기비판론과 현실비판, 허무주의의 길이다. 채만식은 일제 말기<여인전기>(1941),<홍대하옵신 성은>(1942) 등의 친일적 작품 몇 편을 발표하고 몇 번 시국강연회에 나가 강연함으로써 친일의 욕된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해방이 되자마자 친일잔재 청산이 민족적 과제의 하나로 제기되고 일제하 친일행위자의 법적 처벌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문학계에서는 자기비판이 중점적으로 거론되었는데 대부분 문인들은 혼란스러운 혁명적 상황에 휩쓸려 또는 이에 편승하여, 자기비판의 과제를 회피하거나 추상적 일반화를 통해 구체적 친일행위를 無化시키고자 하였다. 자기반성의 결핍을 지적하며 문학자의 비성실성을 질타하는 내용의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사정의 반영이다.526)정호웅,<해방공간의 자기비판소설 연구>(≪한국현대소설사론≫, 새미, 1996).

 채만식만이 거의 유일하게 자기비판에 충실하고자 했던 문인이라 할 수 있는데 위에서 든 작품들에서 우리는 친일의 죄의식에 짓눌려 고뇌하는 한 지식인 작가의 내면을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채만식 또한 철저하지는 못하였으니 결국은 “민족 모두가 죄인이므로 죄인은 아무도 없다”라는 민족적 자기비판론으로 가 닿고 말았다. 이처럼 자기비판의 과제와 씨름하는 주인공의 고뇌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현실의 深部를 탐사하는 리얼리스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민중의 이념적 분열과 정치의 혼란, 경제 혼란, 외세의 침탈 등 당대 현실의 핵심 요소들을 전형적으로 반영하며 비판하고 있는 것인데 채만식의 소설을 통해 비로소 해방공간의 현실이 그 실체를 얻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폭넓고 깊이 있는 현실 재현이며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그러나 채만식은 끝끝내 친일의 죄의식,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타락한 현실을 타개해 나갈 주체와 방법을 현실 속에서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다시금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만다. 과거와 현재를 송두리채 무화시키고 자라나는 소년들의 세계, 미래만을 가치있는 것이라 주장하는<소년은 자란다>(1949)의 희망 아래에는 미래 실현의 현실적 가능성을 상실한 자의 허무의식이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로 출렁대고 있는 것이다.

 친일의 죄의식으로 고뇌한 채만식의 자기비판을 뒷전으로 밀어내며 이 시기 소설을 지배한 것은 世界觀上의 자기비판이다. 지금은 건설기라는 것, 그러므로 과거의 呪縛에 더 이상 묶여 있지 말고 역사 창조의 과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소극적이고 퇴영적인 세계관을 자기비판하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해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같은 자기비판을 다룬 작품들이 가장 많이 씌어졌다. 李泰俊의<解放前後>(1946), 池河連의<道程>(1946), 尹世重의<十五日後>(1946), 安懷南의<暴風의 歷史>(1947), 李根榮의<濁流 속을 가는 朴敎授>(1948)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을 지배하는 것은 빛나는 미래의 도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며 그 같은 미래 실현을 향한 적극적 자기 투신이다. 당연히 낙관적·낭만적 열정이 작품을 뒤덮고 있는데 이로 인해 객관 현실의 구체적 탐구가 크게 제약당하였다. 이들 작품의 기본 틀로 자리잡고 있는 숱한 이분법들이 이러한 사정을 증거한다. 예를 들어 보면 과거 배제/미래 先取, 봉건/반봉건, 순수문학/민주주의 민족문학, 선/악, 순결/불순, 청/탁, 노동자·농민/지식인, 新/舊 등등인데 이로 인해 객관 현실의 단순화·추상화가 필연적으로 초래되었다. 이들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 같은 이분법에 실려, 그것의 힘에 이끌려 조금의 망설임도 회의도 없이 미래를 향해 뚫린 신작로를 거침없이 나아간다. 소설성의 질식인 것이다.

 許俊의<殘燈>(1946)이 또 하나의 길을 보여준다. 해방을 맞아 만주에서 돌아오는 한 지식인의 귀국길 여로가 그것인데, 그 여로를 따라 일본 난민들의 비참한 현실, 사회주의체제가 자리잡아 가고 있는 북조선의 실정 등 해방공간의 현실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 아니라 ‘잔등’ 이미지가 담고 있는 무한 포용의 인도주의와 겸허함이다. 그 인도주의는 단 하나의 피붙이인 아들을 옥에 가두고 마침내 죽게 한 원수의 비참한 모습까지도 안쓰러운 눈물로 바라보게 만드는 무한 포용의 보살심이며 그 겸허함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어떤 보상도 거절하는 철저한 성격의 것이다. 노인의 지극한 겸손과 넉넉한 보살심처럼 잔등 불빛이 “황량한 폐허 위 오직 제 힘만을 빌어 퍼덕이는 한 점”으로 더없이 따스하고 넉넉하게 명멸하고 있는데 그것은 격동의 해방공간을 혼란스레 채웠던 온갖 술수와 음모·모략을, 그것들을 낳은 무한팽창의 욕망과 조급함과 경솔함을 근본에서 비판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해방공간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귀환동포문제였다. 무려 200만 명을 넘는 해외동포를 감당할 수 있는 주거공간과 식량 그리고 일자리를 확보할 수 없었기에, 해방의 흥분이 가시면서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문제로 떠올랐다. 당연하게 이 문제를 다룬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탄광징용에서 귀국한 安懷南의<불>(1946)을 비롯, 만주에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린 廉想涉의<三八線>연작(1948), 金萬善의<鴨綠江>(1946), 허준의<잔등>(1946), 金東里의<穴居部族>(1947), 桂鎔黙의<별을 헨다>(1946)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염상섭의<삼팔선>연작이다. 이 연작은 중국 안동에서 살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염상섭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한 것이다. 해방 직후 중국·북한·남한의 동요하는 현실이 치밀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들 작품을 꿰뚫는 길은 그 같은 현실을 엮는 끈이면서 식민질서의 구속에서 풀려나 조선인으로 되태어나는 재생의 고행길이고 어떤 시대 어떤 곳에서든 사람살이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염상섭 특유의 시각을 확인시키는 원형적 공간이기도 하다.

 김동리의<驛馬>에서 또 하나의 길을 확인한다. 무대는 화계장터이다. 화계장터는 경상·전라 양도를 가르는 섬진강의 경상도 쪽, 쌍계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리잡고 있다. 세 갈래 길이 여기서 만나고 헤어지는데,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 와 만나는 곳이지만, 또한 동시에 헤어져 떠나가는 곳이다. 그러나 주막이나 놀이판 장터에서의 만남은 떠나감을 전제한 것이기에 일시적인 것, 길을 따라 걷는 끝없는 떠나감의 한 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관계만이 맺어진다. 일시적인, 스쳐 지나가는 만남만을 허용할 뿐인 이 끝없는 떠나감의 길을 작품 구성의 중심에 놓은 이 작품의 세계는 두 가지 점에서 무시간적이다. 하나는, 길을 따라가는 끝없는 떠나감의 흐름만 있을 뿐 전후의 변화가 없다는 점, 사람들은 물론 늙어가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 끝없는 떠나감이란 본질은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해서 흐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같은 끝없는 떠나감이 운명적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운명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운명의 극복이 아니라 운명애”527)김윤식,≪한국현대문학사≫(일지사, 1979), 161쪽.인 것인데, 살을 풀기 위해 마련된 문화적 장치인 승적에 이름을 올리기나 책장사 하기도 제어하지 못한 초월적인 힘의 존재를 인식하고 거기에 순종하는 이 같은 감각 속에서 개개인의 고유한 삶의 개별성은 의미를 잃는다. 운명에 순종하는 삶이란 회색의 본질만이 도드라질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 같은 운명애의 세계에서 경험적 시간은 무화되어 무시간성으로 응결되고 만다. 이처럼 경험적 시간이 무화되는 김동리 문학에서는 해방공간의 격동하는 현실상조차 한갓 스쳐 지나가는 풍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홀로 된 두 남녀가 만나 결합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란 주제를 담고 있는<혈거부족>의 경우가 이를 증거한다. 김동리 문학의 특성은 해방공간의 역사성 너머, 한민족의 원형적 삶을 문제삼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의 역사성에 근거하며 거기에 구속되어 있는 여타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黃順元의<목넘이 마을의 개>는 한민족의 생명력을 실어나르는 길을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개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광기 서린 구박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새끼를 낳아 퍼뜨리는 한 마리 개가 주인공이다. 분단이 확정되어 서로 다른 두 체제의 국가로 양분되고 대립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 민족상잔의 가능성조차 드러내던 때, 이 같은 한민족의 생명력 강조는 시련을 뚫고 끝내 나아갈 것이란 희망의 확인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점은 해방된 서울의 세종로 네거리 비각 앞에 등장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지닌 갓난이할아버지의 넉넉한 인간스러움을 해방공간의 현실에 대비시킴으로써 분열과 대립의 시대를 근본으로 비판하는 것과 이어져 있다.

 한편 특이한 경력의 작가 金學鐵의<龜裂>에서도 우리는 또 하나의 길을 만난다. 김학철은 중국의 홍군과 연대해 항일전의 제일선에서 싸웠던 조선의용군 지대장 출신이다. 전투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몸으로 해방 후 귀국, 서울 문단에 자신의 항일투쟁을 소재로 한 몇 편의 단편을 발표, 큰 주목을 받았다.<균열>은 그 중 대표작이다. 이 작품의 큰 특성 가운데 하나는 낙천성이다. 긴박한 전장의 한복판이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으며 팔다리를 잃고 불구가 되어도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일제 말기의 소극적 삶 또는 친일의 과오 때문에 주눅들고 해방 후의 격동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문인들은 이 생소한 낙천성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해방 후에 있었던 어느 작품합평회에서 이 작품을 단순한 르뽀로 폄하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해방공간은 적극적인 자기 개진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린 가능성의 시기였지만, 그 안쪽에는 무수한 변절의 행적을 품고 있었다.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란의 시기였기 때문인데, 그러한 변절의 행적들에 대비되어 金廷漢의 비판과 지조의 문학이 빛난다.<秋山堂과 곁 사람들>(1940)을 마지막으로 붓을 꺾었던 김정한은 해방공간에서<獄中回甲>(1946)과<설날>(1947)을 썼다. 외세의 침탈 아래 통일민족국가 수립의 열망이 억압당하는 현실을 증언하고 있는 작품들인데, 그 안쪽에 깃들인 것은 타락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정신이며 상황을 뒤따르지 않고 초지일관하는 지조의 정신이다.

 증언·비판·지조의 문학인 김정한 문학의 의미가 해방공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근현대사의 파행적인 역사 전개는 그 갈피갈피에 무수한 변절의 욕된 기록들을 새기며 이어져 왔다. 문학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니, 예컨대 15년 전쟁528)만주사변(1931)에서 1937년의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의 종전(1945)에 이르기까지의 15년간을 전쟁상황의 연속으로 보아 15년전쟁이라 지칭한다.기간 동안 황도사상의 마권에 휩쓸리지 않은 문인의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민족주의문학진영, 프로문학진영을 막론하고 온통 무너져 내려 친일의 욕된 명부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해방 직후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 토지개혁과 함께 친일잔재 청산이 3대 과제의 하나로 제기되고, 이를 따라 친일 문인의 자기비판 문제가 무엇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급선 과제로 떠오르고 모두가 이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흐지부지되고 만 가장 큰 요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자기비판의 짐을 지지 않아도 좋은 문인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공범자들이 갖게 마련인 사실 자체의 무화 또는 망각의 심리가 압도적으로 개입해 들어왔던 것이다. 이와 함께 지식인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자기합리화의 욕망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일제 말기에 작품활동을 한 대부분의 문인들이 관련되었지만 그럼에도 진지한 비판과정 없이 묻혀버리고 만 친일의 역사에서 김정한 문학은 벗어나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김정한 문학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 할 것인데, 해방 이후의 문학 또한 이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김정한 문학은 문학사의 한 측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광의 의미를 지닌다.

 해방공간이 끝나면서 이 시기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내적 형식이었던 미래지향적이고 낙관적인 길은 소멸한다. 그 빈자리를 우울한 체념적 비판의 언어가 채운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은 염상섭의<曉風>(1948)이다. 염상섭은 일본의 식민지배에서는 벗어났지만 완전한 독립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 갈수록 굳어져 가는 남북 분단의 현실,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나아갈 방향성을 잃고 깊게 흔들리고 있는 동요와 불안정의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절망감을 애써 억누른 채 올린 안타까운 비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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