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3. 미군정기의 문화
  • 3) 음악
  • (1) 시기구분과 음악사적 특징

(1) 시기구분과 음악사적 특징

 한국 음악사상 해방공간(1945. 8. 15∼1948. 8. 15) 3년은 남에 미군정과 북에 소군정이 통치하는 3년의 시기이지만, 이전의 일제강점기나 이후의 시기(1948. 8. 15∼1950. 6. 25)보다 희망과 좌절이 격동적으로 전개된 시기였다.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민족문화를 수립하는 과제, 그리고 분단을 막고 자주적인 통일문화를 수립하려는 이른바 민족음악 건설 과제는 모든 사람들이 실현할 수 있었던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우리의 독립의지와 민족음악 건설에 관계없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고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에 의한 통치가 실시되었다.

 미군정기 음악사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한다.552)노동은,<해방과 분리공간의 음악사 연구Ⅰ>(≪낭만음악≫겨울호·창간호, 낭만음악사, 1988), 37∼109쪽.
―――,<해방과 분리공간의 음악사 연구Ⅱ>(≪낭만음악≫봄호·제1권 제2호, 낭만음악사, 1989), 4∼140쪽.
―――,<해방과 분리공간의 음악사연구Ⅲ>(≪낭만음악≫여름호·제1권 제3호, 낭만음악사, 1989), 4∼183쪽.
―――,<해방과 분리공간의 음악사 연구 Ⅳ>(≪낭만음악≫가을호·제1권 제4호, 낭만음악사, 1989), 92∼246쪽.

 제1기는 1945년 8월 15일부터 동년 12월 31일까지의 시기로 악단을 정비하고 새로운 조직체들이 창립되는 기간이다. 8월 16일에 결성된 朝鮮音樂家建設本部, 여기에 분화·발전하는 두 개의 조직 결성, 즉 9월 15일의 조선프롤레타리아음악동맹과 高麗交響樂協會(고려교향악단), 그리고 10월 22일의 좌·우 합작을 꾀한 새로운 조직체 朝鮮音樂家協會, 끝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음악동맹을 흡수하여 12월 13일에 朝鮮音樂家同盟이 결성되는 시기이다. 한편 전통음악에서는 李王職雅樂部(구왕궁아악부)와 달리 조선음악가건설본부의 ‘國樂委員會’가 10월 10일에 민중 국악운동을 강령으로 내세우면서 국악원으로 개편·결성되었다.

 제2기는 1946년 1월 1일부터 1947년 8월 15일까지의 기간으로 민족현실과 음악문화에 대한 해석이나 그 입장에 따라 크게 양분되는 시기로 민족좌파와 민족우익중도파 그리고 극우의 해외파가 형성되어 활동하는 시기이다. 민족좌파로 조선음악가동맹과 국악원이, 민족우익중도파는 蔡東鮮의 고려음악협회, 극우의 해외파는 玄濟明을 중심으로 한 계열이다.제2기의 구분은 민족좌파의 음악운동이 1946년 8월 15일를 기점으로 미군정과 관계당국에 의하여 금압이 강화되자 새로운 문화전략으로 대응해 나간 前期와 1947년 8월 15일 직후 채동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집단이 좌와 극우를 비판하면서 음악계 전면에 부각되는 後期로 구분된다. 제2기 전 기간 조선음악가동맹의 역량은 해방공간을 주도하였다.

 제3기는 1947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이다. 미군정과 관계당국이 조선음악가동맹을 불법화시킴에 따라 우파진영의 입지가 전면에 부각되고 새로운 질서가 유도되는 시기이다.

 해방공간의 남북 음악활동은 다음<표>와 같이 주요 악단에 의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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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방공간기의 남북 음악사 전개 도표(… 소멸, → 흡수, ⃞ →영향)
<표>해방공간기의 남북 음악사 전개 도표(… 소멸, → 흡수, ⃞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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