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1. 대한민국의 수립
  • 2) 5·10선거와 대한민국의 수립
  • (1) 단선을 앞둔 미군정·과도정부의 준비

(1) 단선을 앞둔 미군정·과도정부의 준비

 5·10선거는, 기존 정치체제내에서 정권을 둘러싸고 정치세력들이 경쟁하는 통상적 의미의 선거와는 그 성격을 달리 한다. 5·10선거는 남한에서 합법적인 정치권력 즉 정부를 최초로 수립하기 위한 선거로서, 이후 한국의 국가와 정치체제의 기본성격과 방향을 결정짓는 定礎的 의미를 지닌 선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5·10선거에 임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국가와 정치체제의 기본성격과 방향을 결정할 결정권이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미·소의 대립하에서 남한단선이 치러진 당시의 정치상황은, 그 결과 등장할 정치체제가 분단하의 단독정부이며 또한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체제를 택하게 될 것임을 이미 구조적으로 결정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5·10선거는 신생국가의 수립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고 할 수 있는 단일국가 대 분단국가의 문제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간의 체제 선택의 문제 등 국가수립을 둘러싼 그랜드 이슈가 이미 의제에서 배제된 제한적 의미에서의 정초적 선거였다.626)동아일보사 편,≪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동아일보사, 1988), 229쪽. 뿐만 아니라, 이념적인 스펙트럼 상에서 굉장히 협애한 한계가 주어진 제약내에서 정치적 경쟁이 일어나고, 그 한계내에서 정치적 대표가 허용되는 특징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5·10선거를 통해 남한정부가 수립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5·10선거의 결과를 이미 결정짓고 있었던 당시의 정치지형, 즉 정치적 경쟁이 전개된 정치적 환경과 그 제도적 기반 등을 먼저 살펴 보아야 한다. 물론 5·10선거의 정치지형은 해방 이후 1948년에 이르는 전 기간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單選 單政노선이 확정된 1947년 중반 이후에 구조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크게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반공체제의 형성이다. 선거 이전에 이미 좌파 또는 공산주의세력이 합법적인 정치공간에서 배제되었던 것이다. 둘째는,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이념의 이식이다. 5·10선거는 우파만의 경쟁으로 치러졌지만, 다른 한편 복수정당간의 경쟁과 자유선거 등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와 틀이 부과되고 그것에 따라 선거경쟁이 이루어진 점이다. 마지막 세 번째 측면은 5·10선거에 대한 정치세력의 주체적 대응의 측면이다. 즉 5·10선거를 앞두고 남한 정치세력은 체제와 이념의 선택문제 뿐 아니라 분단의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대대적 재편을 거쳤으며, 그 결과 좌파세력뿐 아니라 중도파 및 우파세력의 상당부분도 참여를 거부한 가운데 5·10선거는 치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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