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2) 정당들의 조직과 활동
  • (1)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1)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해방 후 북한지역에서는 서울에 본부를 둔 朝鮮共産黨으로부터 상대적인 독자성을 지니는 北朝鮮分局이 설치된다. ‘러시아 현대사자료보존 및 연구센터’에 소장되어 있는 한 문서에 의하면, 조선공산당의 정책 방향을 세우고 북조선분국을 창설하기로 공식 결정하게 되는 ‘조선공산당 북조선 5도당원 및 열성자대회’는 10월 13일에 열렸다. 이 대회에서 “조직문제에 대하여 오기섭과 김일성이 보고 연설을 하였다”는 기록이 신뢰할만 하다면, 김일성은 이 시기에 이미 당 조직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725)러시아현대사문서보존 및 연구센터, 문서군 17, 목록 128, 문서철 1119, 219쪽. 한편 소련군 정치사령부(ГлавПУРККA) 제7국 부국장 사포쥬니코프는 연해주군관구의 보고에 근거하여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하였다. 그에 의하면, 10월 6일 북조선지역의 공산당 조직위원회가 10월 6일에 창설되었다. 이 조직위원회에는 선전부·조직부·공업부·농민부·기술부의 5개 부서를 둔 조직국이 만들어졌으며, 별도로 통제위원회가 두어졌다. 조직국 제1비서는 김용범이며, 제2비서는 오기섭이었다. 그리고 선전부를 박정애(베라 최)가, 조직부를 이동화가, 농민부를 김책이 담당하였다(러시아현대사문서보존 및 연구센터, 문서군 17, 목록 128, 문서철 47, 19∼21쪽). 위의 조직 편성과 책임자 임명이 확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10월 13일의 대회를 전후하여 변동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문서에는 1945년 10월 1일에 이미 평양에서 북조선의 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들의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朴憲永을 지도자로 하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종속된 “북조선의 당조직 지도를 위한 조직국 창설이 발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726)러시아현대사문서보존 및 연구센터, 문서군 17, 목록 128, 문서철 1119, 216쪽. 10월 13일에 공식적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설이 공표되기 이전에, 그 창설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예비회의가 사전에 열렸음을 알 수 있다.727)북한 출판물에 의거하여 북조선분국 결성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예비회의가 1945년 10월 5일부터 열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박명림,≪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Ⅱ, 나남출판, 1996, 228∼230쪽;이종석,≪조선노동당연구—지도사상과 구조 변화를 중심으로≫, 역사비평사, 1995, 169쪽). 예비회의의 정확한 개최 일자는 불확실하지만, 1945년 10월 13일의 공식 대회인 ‘조선공산당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를 앞두고, 이 대회의 준비를 위한 사전 예비회의가 여러 차례 열리고, 그 과정에서 일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설 방침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위 회의의 결정에 따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이 실제로 조직된 시점은 10월 20일이다.728)≪해방후 10년일지≫(조선중앙통신사, 1955), 41쪽. 북조선분국 설치와 더불어 책임비서 金鎔範·吳淇燮의 지도 아래 북한 6개 道에 道委員會가 설치되었다.729)≪옳다≫, 1946년 1월 6일. 12월 17·18일에 열린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제3차확대집행위원회에서는 “당 활동의 비약적 전개와 全 혁명세력의 총집결”을 위하여 金日成을 책임비서로 추천하고 延安에서 돌아온 武亭을 간부부장으로 영입하였다. 이때 새롭게 짜여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간부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책임비서 金日成

제2책임비서 金鎔範, 간부부장 武亭, 조직부장 吳淇燮, 선전부장 尹相南, 노동부장 許가이, 농민부장 朴昌燮, 청년부장 楊永筍, 婦人部長 朴正愛.

북조선6도당 책임 진용:평남도 張時雨, 황해도 崔景德, 평북도 金明, 함남도 鄭達憲, 함북도 張順明, 강원도 金大鳳(≪옳다≫, 1946년 1월 6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국가건설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본민주주의)정권 수립론으로서, 계층적으로는 노동자·농민은 물론 자본가 등을 포괄하며730)<조선공산당 북부조선 5도연합회에서 한 당조직문제 보고>(≪북한현대사 1≫, 공동체, 1989), 315쪽., 정치적으로는 “모든 반일 민주주의당들과 정치적 단체들의 넓은 연합의 기초”731)<북부조선당 공작의 착오와 결점에 대하여>, 위의 책, 336쪽. 위에 수립하는 통일전선정권 수립론이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소련주둔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북한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북조선분국은 1946년 5월을 전후한 어느 시점에 北朝鮮共産黨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서울 중앙으로부터 형식적으로나 사실적으로나 독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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