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4) 북조선노동당 창당과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
  • (1)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결성과 북조선노동당 창당

(1)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결성과 북조선노동당 창당

 1946년 7월부터 북한에서는 전위정당인 북조선공산당을 대중적 정당으로 발전시키고, 기타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통일전선 조직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7월 22일, 평양에서 북조선공산당·조선민주당·조선신민당·북조선천도교청우당 등 4개 정당대표들과 북조선직업총동맹·북조선농민동맹·북조선민주여성총동맹·북조선민주청년동맹·조쏘문화협회·북조선예술총동맹·북조선불교총무원·북조선소비조합·북조선반일투사후원회·북조선교육문화후원협회·북조선공업기술총연맹·북조선보건연맹·북조선건축동맹 등 13개 사회단체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777)<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 결성에 관한 결정서>(≪民主建國에 있어서 北朝鮮民戰의 役割≫, 朝鮮出版社, 1947), 139∼142쪽. 다른 자료에는 위의 13개 단체에서 북조선교육문화위원회의 이름이 빠져 있으며 그 대신 북조선기독교도연맹·북조선적십자사·북조선인민항공협회 3개 단체가 추가되어 총 15개 사회단체가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결성에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다(≪朝鮮中央年鑑≫, 1949, 88쪽).

 1946년 8월 28일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은 합당 절차를 밟아 북조선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으로 재조직되었다. 두 정당의 합당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1946년 7월부터였다. 7월 23일 조선신민당은 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를 열어 “현 계단의 조선신민당의 과업과 목적이 북조선공산당의 그 과업 목적들과 합치”한다는 이유로 양당의 합당에 대한 의견을 북조선공산당에 제의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신민당 대표 김두봉이 북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김일성에게 합당을 제의하는 서한을 보내고 김일성이 다음 날 이를 원칙적으로 수락하는 회신을 보냈다. 7월 28일에는 양당 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 연합회의를 열어 합당을 결정하였다. 양당 합당과정에서 이를 비판하는 당원들의 목소리도 분출하였으나, 합당은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북조선노동당창립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는 마지막 날 13개 항으로 이루어진 당 강령과 41개조의 당 규약을 채택하고 당 기관지로서≪정로≫와≪전진≫을 합하여≪로동신문≫을 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당 중앙위원회 위원 43명과 검열위원회 위원 11명을 선출한 뒤 폐막하였다.778)이종석, 앞의 책, 184∼188쪽. 김일성이 당 중앙위원으로 추천한 43명 중에서 북조선공산당 출신이 30명, 조선신민당 출신이 13명이었다.779)북조선로동당 중앙본부,≪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제재료)≫(1946), 72쪽.
김광운, 앞의 책, 213쪽.

 북조선노동당은 ‘민주주의 과업을 실천’하는 ‘대중적 정당’임을 표방하였지만, 사실상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정당이었다.780)이종석, 앞의 책,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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