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1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사회생활 6-1(1차)
  • 三. 우리 역사를 빚낸 이들
  • 2. 문화의 꽃
  • ○ 학문의 발달

○ 학문의 발달

신라 때의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에 천문을 관측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천문대이다.

확대보기
경주 첨성대
경주 첨성대
팝업창 닫기

우리 민족은 부족 국가 시대부터 별을 보고, 기후와 농사의 형편을 가려 냈으므로, 이러한 천문학을 연구하는 기계도 만들 수 있었다.

신라의 설총은, 한자의 뜻과 음을 따서, 이두문을 만들어 경서에 토를 달아, 우리말을 옮겨 쓰는 데 편리하게 하였으며, 또 최치원은, 신라 통일 시대에 당 나라로 건너가서 글을 배웠고, 거기서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까지 지내던 문장이다.

그는 신라에 돌아와서 벼슬을 지내다가,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내놓고 나가지 않았다. 그는 유명한 문장이기 때문에 많은 책을 지었으나, 오늘날에는 계원필경집만이 남아 있고, 그가 지은 한시는 일본에까지 애독되었다.

고려의 대장경은, 불교의 모든 경문을 새긴 것으로, 불경의 원천이다. 고려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서 이를 출판하였는데, 처음의 것은 8대 현종 때에(3344) 시작한 것이다. 60여 년의 시일이 걸려서, 6천여 권을 출판하였으나, 그 후에, 의천은 다시 외국으로부터 사들인 4천여 권의 속대장경을 출판하였지만, 아깝게도 이 목판은 몽고 침입 때에 불타 버렸다.

고려는 몽고족과 싸우면서, 다시 대장경을 출판하여(3569~3584), 이 8만 대장경의 경판이, 지금도 합천 해인사에 남아 있어, 세계적 문화재로 되어 있다.

확대보기
대장경 목판
대장경 목판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대장경을 둔 해인사 건물
대장경을 둔 해인사 건물
팝업창 닫기

금속 활자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명한 것으로, 고려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고려는 몽고의 난을 피하여, 서울을 강화도로 옮겼을 때에, 구리 활자로 상정례문이라는 책을 박아냈다. 이 활자는 서양보다도 200년이나 앞서 발명한 것이니, 그 당시의 우리의 문화의 뛰어남을 자랑할 수 있다.

측우기는 세종 대왕 때에(3775) 발명한 것으로, 이것을 전국에 나누어서 우량을 재도록 하였으니, 서양보다도 약 200년이나 앞선 발명이었다.

확대보기
측우기
측우기
팝업창 닫기

이 무렵에, 장영실은 물시계(누각), 해시계(일귀) 등을 만들어, 시간을 재도록 하였으니, 이것도 이순신이 만든 세계 최초의 철갑선과 아울러, 우리 겨레의 빛나는 자랑거리이다.

조선 중기, 정약용은, 정치가 당파 싸움 때문에 심히 부패하였을 때에, 홀로 숨어서 지리, 역사와, 서양의 학술을 연구하던 이익에게 글을 배워, 마침내 실학파의 가장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우리 나라의 여러 가지 학문을 연구하는 한편, 천주교를 솔선 믿었으므로, 죄에 몰려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이 20년 동안에 더욱 학문을 연구하여, 의학자로도 이름을 내게 되고, 목민심서 등 수백 권의 책을 지어 내어,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조선 말기의 김정호는, 우리 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자세한 우리 나라 지도와 지리책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단기 4194년에 출판된 대동여지도이다.

확대보기
대동여지도 제주도 부분
대동여지도 제주도 부분
팝업창 닫기

조선 말기의 지석영은, 우리 나라가 일본이나, 그 밖의 서양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을 무렵의 관리로서, 단기 4212년에는 부산에 와 있던 일본 해군 병원에서 종두법을 배워서, 비로소 서양 의술을 퍼뜨리고, 나중에는 의학교 교장으로 서양 의술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공로를 남겼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