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유교를 받들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차차 국민 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스며들게 되었다.
조상을 받들고 제사를 지내며 부모에 효도하는 유교적인 예절 생활은 굳어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질서는 가장을 중심으로 확립되었으며, 그 권위는 매우 존중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유교 중심의 예절 생활이 더욱 굳어져 갔고, 양반뿐 아니라 평민들 사이에도 퍼져 갔다. 향약은 농촌 사회를 중심으로 한 자치 조직으로, 유교적 도덕의 바탕 위에 서로 돕고 이끌어 주며 힘을 뭉치게 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