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3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국사 6(3차)
  • 4. 민족 국가의 발전
  • (2) 국난을 이겨 낸 우리 민족
  • 〈청나라의 침입〉

〈청나라의 침입〉

한편, 중국에서는 명나라의 세력이 차차 시들게 되자, 이러한 틈을 타 만주에 여진족들이 후금을 세웠다.

후금이 서자, 광해군은 성을 고쳐 쌓고 무기를 갖추는 등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인조 때 후금은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다(1627). 10년 후,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이라 고치고, 다시 쳐들어왔다. 이 병자호란 때에도 우리 나라는 남한 산성에서 결사적으로 싸웠으나, 결국은 강화를 맺었다.

확대보기
남한 산성
남한 산성
팝업창 닫기

조선 사회에서 찬란하게 꽃피던 민족 문화는 두 번이나 겪는 국난으로 파괴되었고, 또한 수많은 인명과 재물을 잃었다. 이것은 외국 정세에 어두워 국방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정리◇

1. 조선은 유교를 중심으로 국가 활동을 폈으며, 차차 제도가 갖추어진 토대 위에 국토가 정비되고 민족 문화가 발전하였다.

2. 민족의 전통을 이어 민족 문화의 터전을 완성한 것은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시대이며, 정치, 경제, 문화에 걸친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다.

3. 양반은, 정치는 물론 학문과 문화 활동에서 국민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가정 생활에 있어서는 효도가 강조되었다.

4. 과학이나 기술에 있어서 고려 때보다 발전한 모습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시기이며, 민족의 창의성을 나타낸 시기이다.

5. 왜란⋅호란 등 외적의 침략을 맞아 우리 민족은 꺾일 줄 모르는 민족 정신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우리 민족과 국토를 지켰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