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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 사회 6-2(4차)
  • 3. 근대화의 싹
  • (2) 근대화의 노력
  • [1] 김옥균

[1] 김옥균

굳게 닫혀 있던 나라의 문이 열리자, 서양의 문명이 물밀듯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라에서는 신사 유람단을 일본에 보내어 발달된 모습을 보고 오게 하였고, 또 과학 기술을 익히고자 청년들을 뽑아서 청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지방의 유생들은 우리의 것을 계속 지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의 좋은 점을 쉽게 버리고 마는 듯하여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옥균, 박영효 등의 젊은 지식인들은 뒤떨어진 것을 하루 빨리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여, 일본과 손잡고 적극적으로 개화 운동을 밀고 나가려 하였다.

개혁을 주장하는 젊은 지식인들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각각 일본과 청나라를 등에 입고 대립하였다.

이 즈음 서울에 처음으로 마련된 우정국의 개국 기념 행사를 이용하여 김옥균 등이 정변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젊은 개화파들이 개혁에 반대하는 쪽을 몰아 내고자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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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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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일찍부터 서양의 새 문물에 눈을 떴고, 박영효와 더불어 일본에 다녀온 후로는 보다 열심히 개화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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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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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까지 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도 기대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혁 쪽에 가담하여 동지들과 정변을 일으켜서 한때 정권을 잡았으나, 겨우 3일 만에 쫓겨나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비록 정권을 잡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나, 문벌과 과거 제도를 폐지하자는 그들의 새로운 주장은 점차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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