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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전봉준

[2] 전봉준

오랫동안 우리 나라와 가깝게 지내 오던 청나라는, 일본이 우리의 젊은 개화파들과 손잡고 세력을 펴고자 하자, 이를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이 어려운 시기에 러시아는 북쪽에서 뻗어 오고, 영국은 남쪽 해안에 자주 드나들었다. 일본은 개화에 뜻을 둔 사람들과 손잡고 왕실에 접근하면서, 한편으로는 장사에 열을 올려 광목, 바늘, 실, 석유 등을 방방곡곡에 팔고 그 대신 쌀을 받아갔다. 이러한 경제적인 침략으로 조선이 일본의 시장이 되고, 청나라는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었다.

백성들은 정부의 허약한 정책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백성들 사이에 외국을 배척하는 사상이 높아갔다. 이러한 백성들의 생각을 이끌어 간 것이 동학이었다.

동학 운동을 이끈 지도자 중에서 군사를 일으킨 사람이 전봉준이었다.

파랑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담력이 크고, 도량이 넓었던 그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잘 알았다. 농민들이 배고파 허덕이고 있을 때에, 고부 군수는 온갖 구실을 만들어 재물을 거두어 들였으므로, 고부군 농민들은 더 이상 견뎌 낼 수가 없었다.

1894년, 전봉준의 지휘에 따라 농민들은 관청을 부수고, 무기를 빼앗아 전주성까지 점령하였다.

크게 기세가 오른 이들은, 외국 세력을 몰아 내고, 계급과 남녀 차별을 없애며 농민을 위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외국 군대의 출동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 때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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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과 동학 농민군
전봉준과 동학 농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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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성공하지는 못하였으나, 김옥균이 서울에서 개혁 운동을 추진한 사람이라면, 전봉준은 지방에서 개혁 운동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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